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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뉴스 깊이보기] “악의 축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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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리아 남부 도시 다라의 한 모스크가 폭격으로 발생한 연기에 둘러싸여 있다. 다라|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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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이란 그리고 북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2년 국정연설에서 언급한 ‘악의 축’(Axis of Evil)다.

이라크전의 명분이 됐지만 이미 실패로 점철된 이 수사가 15년이 지난 2017년, 미국 외교·안보 일선에 부활했다. 외교문제 전문가인 아론 밀러 우드로윌슨센터 부소장은 26일(현지시간) CNN 기고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악의 축’이 돌아왔다”며 이라크를 대체한 시리아와 이란, 북한으로 모양만 살짝 바뀐 삼각 축을 분석했다.

■이라크를 대신 한 축, 시리아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축으로 시리아를 세웠지만 무엇이 ‘악’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를 축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대상인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이달 초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의 공군기지에 토마호크 미사일 59기를 전격적으로 발사했다. 6년간 이어진 시리아 내전에서 IS 거점을 표적해 타격했던 것 외에는 군사적으로 개입을 하지 않았던 미국이, 그것도 아사드 정권을 겨냥한 첫 공격을 단행하자 ‘레짐 체인지’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이 폭격은 시리아 정부군이 자국민에게 또다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폭로가 나온지 사흘만에 이뤄졌다. 국제사회의 아사드 축출 요구가 높아졌고 트럼프 역시 그를 “짐승”, “악마”로 묘사하며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아사드를 향한 단발성 ‘응징’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며칠 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아사드의 운명은 시리아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며 정권 교체엔 직접 나서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는 아사드 정권을 용인하는 듯한 인상마저 줬다.

평화적인 시리아 정권교체는 이란과 러시아가 아사드를 설득해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이다. 밀러 부소장은 미국이 두 나라를 압박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갈등을 부를 수도 있으며 미·러와 이란, 3국의 대리전이 시리아에서 촉발될 위험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아사드는 영토의 일부를 지배하며 정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불안정한 정국을 해소할 방안도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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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18일(현지시간)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해 있다. 테헤란|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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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풍’ 멈춘 이란

부시의 ‘악의 축’ 가운데 유일하게 훈풍이 불었던 곳은 이란이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이란과 핵협상을 성공시켜 이란의 핵사찰, 서방의 대이란 제재 해제를 이끌어냈다.

개방의 바람이 불고 있는 이란은 트럼프 취임과 함께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틸러슨 장관은 “이란은 여전히 테러를 지원하는 주요 국가로 남아있다”며 “핵협상은 실패했다”며 합의 내용의 전면 재검토를 시사했다. 트럼프 역시 이란이 “핵협상 정신”을 이행하지 않는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스라엘 방문에서 핵협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고 국무부도 공식적으로 이란이 핵협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밀러 부소장은 미 정부의 이런 ‘정신분열적 수사’가 이란을 비롯해 이란과 화해모드를 우려하는 우방국 이스라엘, 핵협상을 반대했던 의원들에게 보내는 신호로 해석된다고 봤다. 더 이상 이란에 대해 관대함은 없으며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메시지다.

이란에 대한 입장 변화는 이미 예고됐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시아파 예멘 반군을 대상으로 수십차례 공습에 나섰다. 반군은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에 수차례 폭격을 가하고 있으며 사우디 측은 반군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란과 연관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핵협상과 관련해 이란의 중대한 위반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가 폐지를 시도할 경우 다른 협상 당사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힘들며 이를 대체할 외교적 도구도 마련돼 있지 않다. 특히 시리아와 이라크 내 IS를 없애려고 하면서 중동에선 미국보다 큰 힘을 가진 이란과 싸우는 것은 실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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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인들이 지난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하고 있다. 평양|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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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불확실해진 축, 북한

북한은 부시 행정부 때보다 더욱 도발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체제가 됐다. 트럼프는 핵·미사일 실험을 멈추지 않는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한반도 인근으로 함대들을 보냈다.

그러나 군사적 공격과 제재가 북한의 핵 포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마술적 사고’(논리적 연관성 없는 맹목적 믿음)라고 밀러 부소장은 말했다. 북한은 미국을 실제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으며 생존을 위한 최후의 무기(궁국의 억제력)가 핵이다. 중국 역시 자국의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북한의 안정, 독자적 생존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한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도 작다.

좋든 싫든 트럼프는 북한을 묵인해야할지도 모른다. 이란 관계와 마찬가지로 유일한 해법은 협상이다. 북한을 테이블로 불러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멈추게 하는 한편 핵물질, 핵기술에 대한 수출도 금지해야 한다.

‘악의 축’을 탄생시킨 부시는 미국, 그리고 전 세계가 테러와 대량상살상무기(WMD)에 위협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이라크로 쳐들어갔다.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는데도 성공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이라크는 붕괴된 국가로 남아있고 미군은 그곳에서 여전히 전투를 치르고 있다.

트럼프의 삼각 축 전략은 비극과 실패로 끝난 부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는 않다. 정치와 외교도 필요하다. 트럼프 역시 부시와 마찬가지로 적당한 해법을 찾기는 난망이다. 밀러 부소장은 “악의 축은 생활이 일부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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