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한미FTA 파기시 美도 타격 불가피…트럼프 속내는?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파기할 수 있다는 공식발언을 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공식채널을 통한 사전 통보가 없었던 만큼 발언의 취지와 배경 등을 확인 중이다.

FTA 파기 시 미국도 타격이 불가피한만큼, 최악의 상황을 제시해 엄포를 놓음으로써 협상 기반을 가져가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즈니스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미FTA 파기 시 양국의 교역규모는 30억달러 가량 축소될 것으로 추산된다. 올 초 산업연구원은 ‘한미 FTA 변화가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입 관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 파기 ▲원산지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 뒤 FTA 존치 ▲물품취급 수수료를 부활시켜 한미 FTA 부분 개정 등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한미 FTA가 종료될 경우 양국 무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최혜국대우(MFN)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한미 FTA에서 양국의 세율은 0%에 가깝다. 하지만 MFN 관세율은 업종별로 우리나라가 4.0∼9.0%, 미국은 1.5∼4.0%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무역장벽을 더 높게 쌓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미FTA 파기 시 미국의 타격이 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대(對) 한국 수출 감소 폭은 15억8000만달러로, 한국의 대미 수출 감소액 13억2000만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산업연구원은 FTA 재협상 없이 한미 FTA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미국이 한국의 수출을 견제할 경우 우리나라 대미 무역수지는 약 4억 달러 악화할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FTA 파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보고서 역시 트럼프정부 출범 초기에 작성돼 가장 극단적인 경우까지 상정한 것일뿐이란 설명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재협상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나프타 재협상의 결과가 향후 미국 정부가 추진할 FTA 재협상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처럼 외교 및 무역 상대국과의 사전 조율도 없이 한미 FTA 폐지를 돌연 거론하고 나선 것은 도박이나 사업 거래에서 사용되는 '블러핑(허세 섞인 엄포·bluffing)일 수 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이후 줄곧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등에 대해 공격적으로 언급해왔지만, 무역조치나 G2 간 무역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환율, 무역불균형 문제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대북제재에 대한 협조 등을 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30년전 출간된 트럼프 대통령의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에 담겨있는 '사업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라', '지렛대를 사용하라',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행동하라' 등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USTR의 보고서를 보면 한미FTA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한미FTA 재협상보다 트럼프의 통상정책이 세계 규모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 우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한미 FTA에 맹공을 펼치는 까닭은 단연 무역적자 때문이다. 앞서 한국을 찾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미국의 무역 적자가 두 배 이상 늘었다"면서 "이것은 아픈 사실(hard truth)"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미 FTA 발효 이전인 2011년 116억4000만달러였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016년 232억달러 수준으로 늘었다. 미국 상무부가 추정한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대한국 무역적자)는 277억달러 수준으로 더욱 높다. 특히 협상 0순위로 거론되는 한국의 승용차 무역흑자는 2011년 83억 달러에서 2015년 2배 가까이 되는 163억 달러로 증가했다.

이를 감안하면 FTA 이행법에 따라 미국이 추가적인 관세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대규모 무역적자를 이유로 미국이 상식적 수준을 뛰어넘는 규모의 관세율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국내 농축수산물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 확대에 대한 압력도 거세질 전망이다. 쇠고기와 오렌지, 쌀, 녹두 등에 대한 협정세율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원산지 검증 원활화와 법률서비스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미 FTA에 관한 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각 대안별로 대응 방안을 마련해 온 만큼 앞으로도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며 “한미 FTA의 상호 호혜적인 성과와 충실한 이행 등을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설명, 협의하면서 철저히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미 FTA에 대해 "끔찍한(horrible) 협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한미 FTA를 대선 경쟁상대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책임으로 돌리며 "한미 FTA는 힐러리가 만든, 받아들일 수 없고 끔찍한 협정이다. 재협상하거나 종료(terminate)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