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7 (수)

월스트리트를 놀라게 한 도로시의 은구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최우성의 동화경제사

(9) <오즈의 마법사>


한겨레

1900년 사우스다코타주의 지역신문 발행인 프랭크 바움이 펴낸 <오즈의 마법사>는 1939년 할리우드 영화사 엠지엠(MGM)이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영화에선 도로시가 신은 구두가 은색에서 루비색으로 바뀌었다. 위키피디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누구 편에서 싸울 것입니까? 돈을 가진 자본가 편입니까? 투쟁하는 대중의 편입니까?”

1896년 7월9일 미국 시카고의 원형극장. 한 남자의 격정적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연단에 선 앳된 얼굴의 주인공은 네브래스카주 하원의원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당시 나이는 36살이었다. 연설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우리는 금본위제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노동자의 이마에 가시면류관을 씌우지 말고, 인류를 황금십자가에 못박지 말라고.” 연설이 끝나자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숨고르기였을까. 곧이어 어마어마한 환호가 터져나왔다. 장내를 정리하는 데만 30분 가까이 걸렸을 정도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설 중 하나로 꼽히는 ‘황금십자가 연설’의 현장은 이랬다. 이튿날, 브라이언은 그해 11월 치러질 대통령선거에 나설 민주당 후보로 뽑혔다. 대통령 출마 자격 연령(35살)보다 단 한 살 많은 젊은 정치인이 일으킨 대파란이었다.

브라이언의 황금십자가 연설 4년 뒤인 1900년. <오즈의 마법사>란 제목을 단 아동소설이 세상에 등장했다. 네브래스카와 이웃한 사우스다코타주의 지역신문 발행인 프랭크 바움이 쓴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공식적인 초판 발간에 앞서 시험용으로 배포한 인쇄본은 일찌감치 입소문을 타며 너도나도 구하려 난리였고, 초판 10만부도 눈 깜짝할 새 매진됐다. 유명한 삽화작가 윌리엄 덴슬로가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멋진 그림을 보탠 것도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관한 우화”

무엇보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맘껏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줄거리가 단연 압권이었다. 캔자스주의 넓은 들녘 한복판에 도로시란 이름의 소녀가 살았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펼쳐진 잿빛 들판뿐이었다. 하루는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도로시네 집을 덮쳤다. 회오리바람은 도로시와 ‘친구’ 토토(강아지)가 머물던 집을 공중으로 붕붕 띄우더니 어느 아름다운 고장 한복판에 내려놓았다. 끝이 뾰족한 둥근 모자를 쓴 ‘먼치킨’들은 도로시를 기쁘게 맞이했다. 알고 보니 도로시네 집이 땅으로 내려오면서 먼치킨들을 노예처럼 부리던 못된 마녀가 깔려죽은 것. 그곳 오즈의 나라에는 네 명의 마녀가 살고 있다고 했다. 북쪽과 남쪽엔 착한 마녀가, 동쪽과 서쪽엔 못된 마녀가 살았는데, 이 중 동쪽의 못된 마녀 하나를 없앤 셈이다. 고향 캔자스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도로시에게 먼치킨들은 에메랄드시에 살고 있는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라고 귀띔했다. “에메랄드로 가는 길에는 노란 벽돌이 깔려 있어요.”

한겨레

189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한 ‘황금십자가 연설’을 빗댄 삽화. 브라이언은 이 연설에서 금본위제를 황금십자가에 비유하며, 자유로운 은 주조를 주장했다. 위키피디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못된 마녀가 신던 은구두를 작별선물로 받은 도로시는 노란 벽돌길을 따라 길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허수아비가 보였다. “보다시피 난 밀짚으로 만들어져 머릿속에 아무것도 든 게 없거든. 너랑 함께 가면 오즈의 마법사가 나한테 두뇌를 선물해줄까?” 조금 더 걸어가자 낮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양철로 만들어진 나무꾼이었는데, 옛날에 마을 아가씨를 사랑했다가 못된 마녀의 마법에 걸려 몸을 다친 후 양철로 다시 태어났다고 했다. “문제는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거야. 내게 다시 마음이 생겨난다면….” 또 얼마나 걸었을까. 이번엔 난데없이 사자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사자는 실은 자기가 덩치만 큰 겁쟁이라고 털어놨다. “오즈의 마법사가 나한테 용기를 줄 수 있을까?” 함께 길을 나선 도로시와 토토, 허수아비와 양철나무꾼, 용기 없는 사자는 깊은 골짜기를 건너고 양귀비 꽃밭을 지났다. 드디어 노란 벽돌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자 커다란 성문이 나타났다. 에메랄드시였다.

<오즈의 마법사>는 출간 이래 줄곧 “진짜 미국적인 동화”란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쓴, 뛰어난 창작동화라는 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 헨리 리틀필드라는 이름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역사학 학술지에 <오즈의 마법사>의 서사구조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할 때까지는…. 리틀필드는 이 작품이 단순히 어린이용 동화가 아니라 미국 역사의 특정 시기를 배경으로 삼은 ‘역사소설’이며, 구체적으로는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관한, 지극히 정치적인 우화”라고 결론지었다. 대체 무슨 얘기일까?

다시 브라이언과 1896년 미국 대선 이야기로. 미국의 제25대 대통령을 뽑는 그해 선거는 흔히 ‘화폐선거’란 이름이 따라다녔다. 특이하게도 화폐 제도가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오직 금에만 화폐의 지위를 줄 것이냐, 아니면 은도 화폐로 함께 사용할 것이냐의 논쟁이었다. 덧붙여 정부와 민간 중 누가 화폐를 발행할 것이냐를 두고도 의견이 첨예하게 맞섰다. 현대인의 눈엔 기이하게 비칠지 모르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1913년 탄생)가 만들어지지 않아 연준폐(지폐)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1896년 대선은 100년 남짓한 미국의 화폐 역사가 응축된 사건이다.

한겨레

1900년 출간된 <오즈의 마법사> 초판 표지. 위키피디아


건국(1776년) 이후 화폐 문제는 미국의 골칫거리였다. 화폐로 사용할 만한 금과 은이 부족했던 터라, 미국 사회의 일상엔 영국 금화와 스페인 은화가 마구 뒤섞여 있었다. 1792년 알렉산더 해밀턴 재무장관은 금(1.604그램)과 은(24.057그램)의 교환비율을 1 대 15로 못박고, 이 비율만 지킨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화폐(동전)를 주조해 유통시킬 수 있도록 허가했다. 문제는 금·은 광물의 공급량에 따라 현실의 교환비율이 널뛰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전쟁이 일어나 전세계적으로 금(실물)의 가치가 치솟자 이 비율은 무너졌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됐을 땐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은의 상대가격이 오르면서 은화를 녹여 보석이나 기타 물건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늘었다. 은화가 빠르게 사라진 것이다. 다시 10년 뒤. 이번엔 엄청난 규모의 은광이 네바다주에서 발견됐다. 같은 이치로 금화 유통량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처럼 불안정한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해법은 명확했다. 금과 은 둘 중 하나만 화폐로 사용하는 것! 이미 나라 밖에선 금본위제를 속속 채택하고 있었다. 금이 해외로 빠져나가 미국의 대외지불능력이 훼손되는 걸 막으려면 미국도 은을 공식적으로 ‘버릴’ 수밖에 없었다. 1873년의 일이다.

‘콕시의 군대’의 워싱턴 행진

불행히도,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글로벌 불황이 전세계를 휩쓸던 시점이다. 복본위제(금·은)에서 금본위제로의 변화는 사실상 화폐공급 축소를 뜻했다. 동부의 산업노동자들도 실업의 고통을 겪긴 했으나 불황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졌기에 그나마 물가 부담은 조금 던 편이었다. 이에 반해 농산물 가격 폭락의 직격탄을 맞은 서부 농민들의 피해는 엄청났다. 특히 농민들 대부분은 동부의 은행가와 철도·창고 업자들한테 빚을 지고 있던 터라 상황이 더 심각했다. 이들 입장에선 상대가격이 낮은 은을 화폐로 주조할 수 있다면 채무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봉쇄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 눈에 1873년의 조처가 동부 은행가들이 주도한 ‘1873년의 범죄’로 비친 배경이다.

1900년 출간된 동화 <오즈의 마법사>
‘인민주의 정치우화’ 해석 낳기도화폐
제도 놓고 정면충돌한 1896 대선
브라이언의 ‘황금십자가 연설’로 화제

금·은 복본위제 유지하던 미국 사회
화폐공급 널뛰기하는 한계 드러내
경제불황 직격탄 맞은 서부 농민들
‘자유로운 은 주조’ 되살리려 저항


한겨레

<오즈의 마법사>가 인기를 끈 데는 당대의 유명한 삽화가 윌리엄 덴슬로의 그림이 곁들여진 것도 한몫했다. 위키피디아


1870년대 중반부터 서부 농민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등장했다. 이들은 농민공제회와 농민동맹 형태로 꾸준히 조직화에 애쓰더니, 1892년엔 드디어 전국 단위의 정치조직인 ‘인민당’을 창당했다. ‘자유로운 은 주조’(free silver), 즉 복본위제 복귀가 핵심 슬로건이었다. 그해 대선에선 100만표 이상(8.5%)이 제3당인 인민당에 몰렸다. 1896년 대선에선 열기가 더욱 달아올랐다. 반짝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1893년부터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탓이다. 민주당조차 인민당의 주장에 힘을 싣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브라이언은 원래 인민당 소속이었다. 민주당 내 복본위제 찬성그룹이 그를 공화당에 맞서는 진보진영의 대표주자로 내세우면서 공식적으론 민주당-인민당 연합후보 자격으로 대선에 나선 것이다. 때는 화폐전쟁의 한복판이었다.

다시 도로시를 뒤쫓아가자. 캔자스(미국 땅 한가운데 있는 주)를 덮친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에 혼란에 빠진 미국사회를 연상시킨다. 온통 잿빛뿐인 도로시네 마을 풍경은 불황에 지친 미국 경제의 현주소다. 허수아비(농민)와 양철나무꾼(노동자·소상공인), 용기 없는 사자(정치인)와 함께 노란 벽돌길(금본위제)을 따라 동쪽 끝 에메랄드시(금권정치에 놀아나는 워싱턴디시)를 찾아간 도로시에게 가짜 마법사로 밝혀진 오즈(무능한 대통령)는 먼저 서쪽의 못된 마녀를 죽이고 오라고 말했다. 서쪽 마녀를 도로시가 무찌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도로시가 옆에 있던 물통을 들어 마녀에게 쏟아붓자 마녀는 점점 오그라들었다. 완전히 녹아서 형체가 사라지기 직전 마녀가 내뱉은 말. “내 몸에 물이 닿으면 끝장이란 걸 몰랐니?” 돈 가뭄을 해소하는 화폐공급 확대의 지혜를 일깨우는 대목이다.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도로시는 남쪽의 착한 마녀의 입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뒤늦게 깨우쳤다. “네가 신고 있는 은구두가 너를 캔자스로 데려다줄 거다. 여태 그걸 몰랐구나.” 은화가 답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정말 의도적으로 인민당(인민주의)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던 걸까? 명확하지는 않다. 프랭크 바움은 여성 참정권을 위해 정열적으로 활동했으나(그는 유명한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의 딸과 결혼했다) 그가 이끌던 지역신문의 논조는 공화당에 기울어 있었다. 바움은 1890년 사우스다코타주에서 벌어진 아메리카 원주민 탄압(‘운디드니 대학살’)과 관련해 “우리(백인)의 안전은 인디언들을 완전히 몰살하는 데 달려 있다”는 글을 남긴 장본인이다.

한겨레

네브래스카주 하원의원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36살의 나이에 민주당-인민당 연합후보로 1896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으나 공화당의 윌리엄 매킨리 후보에게 패배했다. 위키피디아


그러나 인민당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바움 역시 당시 미국사회의 최대 현안이 무엇인지 깨닫고 있었다고 봐야 옳다. 실제로 1890년대엔 이 작품의 모티브를 제공했음 직한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콕시의 군대’라 불리는 실업자 행진(1894년)은 마법사 오즈를 만나기 위해 에메랄드시를 찾아가는 도로시 일행의 여정을 떠올린다. 오하이오 출신의 제이컵 콕시를 주축으로 한 수천명의 직공 부대는 극심한 불황을 이겨낼 해법으로 화폐공급 확대, 정부의 불태환지폐 직접 발행 등 인민주의적 색채가 짙은 주장을 펴며 피츠버그와 미국 땅을 가로질러 워싱턴디시까지 행진했다.

아카데미상 휩쓴 ‘오버 더 레인보’

한겨레

도로시가 은구두의 마력 덕에 캔자스의 고향집에서 행복한 삶을 되찾은 것과는 달리, 현실의 브라이언(인민주의)은 패배했다. 화폐제도를 놓고 정면대결한 1896년 대선은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공화당(윌리엄 매킨리)의 승리로 끝났다. 브라이언은 남부와 서부에서 크게 선전했으나, 그밖의 북·동부와 태평양 해안지대에선 공화당 벽을 넘지 못했다. 브라이언은 꿈을 접지 않고 1900년과 1908년 두차례 더 대선에 나섰다.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화폐문제가 지닌 다층적 측면도 영향을 미쳤을 공산이 크다. 주로 농민에 기반을 둔 인민주의 운동은 노동시간 단축과 이민 제한 등의 카드로 노동계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고자 공을 들였으나, 둘 사이엔 이해관계 충돌의 여지가 애초부터 컸다. 대도시 산업노동자의 눈에 화폐공급 확대가 인플레이션 위험(구매력 하락)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했다. 더군다나, 1890년대 말 알래스카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약속이나 한 듯 대규모 금광이 잇달아 발견됐다. 함유량이 적은 원광에서 금을 추출해내는 신공법도 속속 등장했다. 굳이 은을 화폐로 쓰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화폐공급의 길이 열린 셈이다. 화폐 문제는 시야에서 차츰 사라져갔다.

‘무지개 너머 저 어딘가 높은 곳에/ 자장가에 가끔 나오는 나라가 있다고 들었어/ 무지개 너머 저 어딘가 하늘은 푸르고/ 네가 꿈꿔왔던 일들이 정말 현실이 되는 나라….’ 1939년 할리우드 영화사 엠지엠(MGM)이 프랭크 바움의 원작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 영화에서 16살의 주연배우 주디 갈런드가 부른 ‘오버 더 레인보’의 가사 앞토막이다.(1940년 아카데미상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받았다) 황금을 무기로 세상을 주무르는 주류 질서에 온몸으로 맞섰다가 무릎을 꿇은 인민주의 운동. 도로시가 꿈꾸던 세상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서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한겨레

최우성 토요판 에디터. 평소 경제와 역사를 한묶음으로 바라보려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일까. 우연히 다시 읽어본 어릴 적 동화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 동화들을 추려, 동화가 탄생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살펴보고 당대의 주요 사건을 곁들여 새롭게 읽어보려 한다. 어쩌면 어른의 동화읽기다. 격주 연재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 대선 팩트체크] [페이스북] [카카오톡] [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