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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축구] 차두리 분석관의 6개월, 미봉책이 만든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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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차두리 분석관이 축구대표팀을 떠난다. 6개월 전 만남도 뭔가 찜찜했는데 마지막도 썩 깔끔하지는 않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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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만남도 뭔가 찜찜했는데 이별도 깔끔하지가 않다. 결과적으로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꺼내들었던 미봉책이 화근이었다.

아주 애매한 직함과 역할을 수락하며 흔들리던 슈틸리케호에 승선했던 차두리 분석관이 축구대표팀을 떠난다. 축구협회는 28일 오전 "차두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이 대한축구협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물러났다"고 알렸다. 지난해 10월27일 부임했으니 딱 6개월만의 하차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차두리 분석관은 이미 3월 말 사의를 표명했다. 축구협회는 계속 함께 하자는 뜻을 전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만류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유럽파 점검 차 독일을 갔을 때 직접 차두리 분석관을 만나 남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아 최근 사표를 수리했다"고 전했다. 등장은 화려했는데 떠날 때는 소란을 최소화하는 분위기다.

차두리 분석관의 선임은 파격적인 뉴스였다. 아무도 모르게, 예상치 못하게 급히 진행됐다. 지난해 10월27일 오전 대한축구협회는 독일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던 차두리를 국가대표팀의 전력분석관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날 오후 2시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 강당에서 차두리와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코치가 팀에 합류하는 일로 기자회견까지 열진 않는다. 심지어 대표팀 코치에 필요한 지도자 A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억지로 직책을 만들어준 '전력분석관'을 위해 기자회견을 연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슈틸리케호의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았다.

당시 대표팀은 10월6일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3-2로 신승을 거뒀고 닷새 뒤 이란 원정에서는 졸전 끝에 0-1로 패했다.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신뢰가 점점 떨어지던 시점이었다. 대표팀 내부적으로 '소통'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들도 나올 무렵이다.

기자회견에서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이란 대표팀의 네쿠남이 코치로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며 우리도 대표선수 경험이 많은 지도자가 '형님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은퇴한 차두리에게 SOS를 친 배경을 설명했다. 동생들을 다독이는 형님이자 타국 젊은이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을 위한 메신저 역할을 맡긴 것이다.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으나 어쩌면 분위기 전환을 위한 측면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대표팀을 향한 국민적 성원이 뚝뚝 떨어질 때였다. 차가운 시선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한 반전 카드가 필요했다. 그때 협회가 꺼내든 차두리는, 일단 적중했다. 실력과 성실함으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차두리 영입 소식에 축구 팬 다수가 환영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우려가 적지 않았던 선택이었다. 자격증 유무는 두 번째였다. '형님이 필요하다'는 축구협회의 처방전이 틀렸을 수 있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제 막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하는 차두리는 흠집만 남을 수도 있던 위험한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차두리 분석관은 "대표팀에 도움이 되고자 나름 노력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면서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축구협회의 발표 그리고 축구협회라는 창구를 통한 차두리의 사퇴 변만으로는 정확한 속사정까진 파악하긴 어렵다. 하지만 뭔가 또 깔끔한 상황은 아닌 모양새다.

애초 차두리 분석관의 활동 기간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최종전까지였다. 기간 연장여부는 예선이 다 끝난 후 다시 협의키로 했다. 단기 계약이었다. 그런데 최종예선 3경기를 소화하고, 아직 3경기가 남아 있는 시점에서 스스로 하차를 결정했다. 6개월 전 숱한 잡음을 각오하고 시작했을 텐데 그 짧은 임기(?)도 채우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다.

축구협회가 당시 차두리 분석관을 선임했을 때 뉴스1은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아직은 미봉책이다. 내부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향후 오랫동안 한국 축구가 귀하게 써야할 차두리의 지도자 커리어에 흠집만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려가 현실이 된 모양새다.

어떤 식으로든 차두리 분석관은 상처가 생겼을 공산이 크다. 앞으로 지도자의 길이 창창하기에, 시련도 실패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상처가 생겼다는 것은 달갑지 않다. 주위에 있는 이들이 보다 사려 깊게 고민하고 신중하게 판단을 내렸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 더 씁쓸하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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