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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손주를 등에 업은 할머니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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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휴가도, 아빠 육아휴직도 당당하게 쓸수 있기를

[연재] '솔이 엄마' 김보영 아나운서의 워킹맘 다이어리


베이비뉴스

손주를 등에 업은 할머니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베이비뉴스


날이 무척 좋습니다. 봄볕이 좀 따갑다 싶으면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적절한 온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히 계절의 여왕답습니다.

미세먼지가 좀 복병이기는 해도 봄을 즐기기에 걷는 것 만한 게 없지요. 그래서 요즘은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합니다.

얼마 전 아침 일입니다. 집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친정 엄마 나이 또래의 한 어머니께서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채 옆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아침부터 손주가 보채서 바깥으로 나왔는데 날이 좋아 좀 걷고 계시다고요. 여기서 좀 쉬여야겠다며 다리를 주무르십니다. 저희 엄마 같기도 하고, 버스를 기다리며 말동무도 할 겸, 손주가 몇 살인지 여쭈었더니 이제 13개월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딸인데 좀 남자아이 같지요? 애가 아직 머리숱이 적어서.”

어머님은 당신의 등에 업혀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외손주세요?” 하고 물었더니 "딸아이가 결혼을 늦게 해 걱정했는데 다행히 곧바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내가 봐 주고 있다"는 긴 답이 돌아왔습니다.

“따님이 직장에 다니는가 봐요.”
“사위하고 맞벌이에요. 같은 직장에 다니는데 둘이 벌지 않으면 살 수가 있나. 젊은 사람들 고생하는 데 내가 다른 건 못 도와줘도 애는 봐줘야지. 저희들은 베이비시터 구하겠다고 했는데 그냥 내가 봐준다고 했어요. 힘들게 일해서 그 돈 다 줘버리면 무슨 소용이야. 남이 봐주는 것, 믿을 수도 없고.”

어머님은 혹시나 당신의 딸과 사위가 흉이라도 잡힐까 그러시는지 긴 호흡으로 설명을 이어 갔습니다. 저는 얼른 어머니께 “저희 아이들도 친정 엄마께서 키워주셨어요. 아마 따님 부부가 무척 감사해 할 거예요. 아가가 복받았네요~ 이렇게 좋은 할머니를 만나고!” 어머님은 그제야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그러고는 “뭐 생색내려고 하는 일인가. 애들 돕자고 그러는 거지. 그런데 주변에서 그러대요. 다 키워놓으면 언제 키워줬냐, 그런다고. 손주들도 나중에는 자기들 엄마, 아빠만 좋다 한다면서”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마침 버스가 온 탓에 어머니와의 대화는 여기서 끊겼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포대기를 허리에 질끈 동여맨 어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만 해도 직장에서 출산휴가를 쓰려면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최근 십 년 사이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지만 둘째 아이 출산에 육아휴직까지 당당하게 요구하기 힘들다는 엄마들이 많지요. 육아휴직을 다 쓴다 해도 복직 후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느냐는 문제도 큰 고민거리입니다.

물론 아침에 만난 어머님이나 저희 친정엄마처럼 흔쾌히 손주를 맡아 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또한 마음 편한 일은 아닙니다. 인생의 노년을 즐겨야 할 나이이신데다 어머니의 약해진 등허리에 손주를 업혀드리는 일은 어쩌면 불효나 다름없으니까요.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믿을 수 있는 분인지, 금세 그만두지는 않을지, 언제나 불안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온종일 아이를 맡기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마다 각종 보육, 양육 정책 공약들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있습니다. 후보들은 국공립 어린이집, 병설 유치원 수를 늘리고 보육 교사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합니다. 아동 양육수당을 늘리겠다는 공약도 보입니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어 얼마나 공약을 실천할지 일단 두고 볼 일입니다.

하지만 제도나 정책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입니다. 둘째, 셋째 아이의 출산 휴가도, 아빠 육아휴직도 당당하게 쓸 수 있는 분위기 말이지요.

문득 얼마전 만난 어머니께 이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따님이 어머님의 감사한 배려 덕분에 장차 회사 임원도 되고, 사장도 되돼 기쁨 드릴 날이 올 거라고요. 또한 등에 업힌 손녀가 자라 어른이 돼도 할머니의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고 보답할 거라고요.

고생을 마다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손주들을 돌봐주시는 워킹맘·워킹대디의 어머님들께, 자식들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칼럼니스트 김보영은 두 딸 솔이와 진이의 엄마이자, 방송인, 작가로 활동중입니다.현재 국회방송 <TV, 도서관에 가다>, 맘스라디오 <우아한부킹>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대한민국 대표엄마 11인의 자녀교육법>이 있습니다. 현재 <초등 학부모를 위한 국어교육법>을 집필하며 관련 강연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의 및 의견은 bbopd@naver.com으로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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