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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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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기자]
더스쿠프

일자리 질質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긋지긋한 불황에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좁아터진 취업문을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임금을 제때 주지 않는가 하면 일한 시간을 빼 임금을 줄이기도 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알바생 임금꺾기의 불편한 진실을 취재했다.


6470원. 법으로 정해진 시간당 최저임금이다. 하지만 노동계에선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한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다는 거다. 대선주자로 나선 후보들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걸었다. 임기 내에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거다. 좋다. 문제는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마저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ㆍ2014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3.7%가 저임금근로자다. 저임금 근로자란 임금중위값(2014년 기준ㆍ2465만원)의 3분의2 미만을 받는 근로자를 말한다. 흔히 임금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저임금 근로자 비율을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아일랜드(25.1 %), 미국(24.9%)에 이어 OECD 국가 중 세번째로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높다.

특히 고용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여성과 청년들이 저임금 상황에 놓여 있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2배 이상 높다. 남성 근로자 중 15.4%가 저임금 근로자인 반면 여성 근로자 가운데 저임금 근로자는 37.8%다. 여성 근로자가 도매업이나 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 등 저임금 산업,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아서다. 이런 일자리 환경은 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임시직이나 시간제 등 비정규직으로 일할 가능성이 높다. 임금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질도 낮다는 얘기다. 25세 미만 청년층의 저임금 비중도 점점 늘고 있다.

최저임금은 저임금보다 더 낮다. 저임금이 중위임금의 3분의2라면,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절반 수준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6년 7월, 6030원이던 시간당 최저임금을 7.3%(440원) 올려 6470원으로 결정했다. 하루(8시간)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5만176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135만2230원(6470원×209시간)이다. 최저임금은 1989년 처음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후 1998년 외환위기(2.7%)와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2.8%) 때 낮은 인상률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다. 2014년부터는 7%대 인상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근로자 모두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건 아니다. 10대 임금근로자 중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근로자는 57.6%다. 20~2 4세 근로자도 23.8%다. 대부분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나 편의점, 영화상영업체 등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는 이들이다.

더스쿠프

문제는 이들을 대상으로 비양심적인 고용 행태가 만연해 있다는 거다.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 청년 아르바이트생을 대상으로 현장 실태조사를 한 결과, 2명 중 1명은 임금체불을 경험(48%)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청년임금체불 신고액도 지난해 1400억원을 돌파했다. 역대 최고치다. 임금체불 신고자 5명 중 1명은 청년층일 정도로 청년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신고 건수는 5%도 되지 않는다. 힘없는 '슈퍼을'이라서다.

별거 아니라는 시선에 두 번 상처

한달 전부터 한 프랜차이즈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정연(가명)씨는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근무한다. 실제 출근시간은 12시 30분. 오픈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30분 먼저 나가 오픈을 준비한다고 해도 그 시간은 시급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씨는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다. "뉴스에서 '임금꺾기'라는 말을 듣고서야 이게 잘못된 거란 걸 알았어요. 하지만 알았다고 해서 제가 뭘 어쩌겠어요. 괜히 말 꺼냈다가 점장님 눈밖에라도 나면 겨우 구한 알바 자리 잃을까봐 그냥 잠자코 있어요."

정아름(가명)씨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5분, 10분 꺾는 건 기본이다. 출퇴근기록부를 수기로 작성하면 "시간을 바꾸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출퇴근부에 출근시간을 12시 50분으로 적었더니 매니저님이 1시로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날은 매장 정리하는 게 늦어져 1시간 늦게 퇴근해도 전혀 반영을 하지 않더라고요.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들 그렇대요."

노동현장에서 만행하고 있는 '임금꺾기'다. 임금꺾기란 알바생들의 임금을 30분 단위로 지급해 근무시간 앞뒤의 준비시간이나 마무리시간을 '버림' 방식으로 산정하는 거다. 8시간 25분을 일하면 25분은 버리고 8시간만 계산하는 식이다. 비정규직 시간제 근로자들에게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 정작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3월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은 임금꺾기를 해온 롯데시네마의 사과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관리감독도 촉구했다. "지금까지 어떤 부당행위가 어떤 규모로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파악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알바노조는 "당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임금체불과 근로기준법 위반 행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며칠 후 고용노동부가 기다렸다는 듯 "48개 영화관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 213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중 44개소에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주휴수당 부족지급, 연차수당 미지급 등 금품 위반사항을 적발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임금꺾기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고용노동부 조차 임금꺾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관리감독기관마저 외면하는 임금꺾기에 청년들 상처만 덧나고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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