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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냥이는 장독대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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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엉덩이 지지고 ‘식빵’ 굽고 감로수 마시고

한겨레21

장독대에 일렬로 앉은 고양이들. 이용한


고양이는 오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올라간다. 나무와 지붕은 물론 자동차와 장독대까지도 녀석들은 ‘캣타워’로 삼는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장독대에 대한 고양이들의 애정은 각별한 것 같다.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2년 전 출간한 고양이책의 배경이 된 다래나무집에는 제법 많은 장독 항아리가 있었다. 고양이들이 자주 장독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어느 순간 이곳은 ‘냥독대’라 불리게 되었다. 고양이들에겐 이곳이 친환경 캣타워이자 ‘빵굼터’(고양이가 무릎을 말아 앉은 자세를 애묘인들은 ‘식빵 굽는다’고 함)이고 놀이터이며 약수터나 다름없다.

고양이들은 주로 봄가을과 초겨울에 장독에 올라가 일광욕을 한다. 햇볕을 받은 장독은 마치 구들장처럼 데워져 온돌 구실을 한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이곳에 올라 몸을 지지고 해바라기를 하면서 식빵까지 굽는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고양이가 일광욕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체온조절 때문이지만, 피부와 털을 말리는 과정에서 살균과 외부 기생충까지 없애는 효과가 있다. 식사 뒤 그루밍(털 손질) 시간에도 녀석들은 장독대를 즐겨 찾는다. 따뜻한 옹기에 엉덩이 찜질을 하며 그루밍을 하고 나면 저절로 잠이 와서 항아리마다 한 마리씩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하지만 더운 여름이면 장독 뚜껑은 달궈진 프라이팬처럼 뜨거워져 감히 고양이들은 그곳에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영하 10℃ 안팎의 한파가 지속되는 한겨울에도 장독대를 찾는 고양이의 발길은 뜸해진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면 제아무리 장독이라도 차갑게 얼어붙는다. 여기에 폭설이라도 내리는 날엔 냥독대가 개점휴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삼한사온이라 했으니 어느 정도 날이 풀리고 눈이 녹으면 장독대는 다시금 고양이들로 붐빈다. ‘납설수’(눈이 녹은 물)를 마시러 녀석들이 장독에 오르는 것이다.

봄가을에는 또 고양이들이 항아리 뚜껑에 고인 ‘감로수’(이슬이나 서리가 녹은 물)를 마시느라 장독대가 붐빈다. 녀석들은 마당에 따로 물그릇을 내놓아도 본체만체 항아리로 올라가 보란 듯이 장독에 고인 감로수를 마신다. 눈을 지그시 감고 감로수를 음미하는 고양이들을 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 여름은 여름대로 장독에 고인 빗물(‘지장수’라 불러도 좋겠다)을 식수로 사용한다. 발 젖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고양이들이지만, 수시로 젖은 발을 털면서도 녀석들은 장독에 고인 빗물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양이들은 장독대를 야외 놀이터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여기서 녀석들은 툭하면 숨바꼭질을 하고 항아리를 오르내린다. 가끔은 장독대 앞 자작나무에 날아온 새를 구경하느라 10여 마리 고양이가 장독대 앞줄에 나란히 앉은 것도 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은 나만 볼 수 없어서 여러 번 사진으로 남겼는데, 어떤 분은 이 모습이 믿기지 않는지 연출된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고양이 집사들이야 잘 알겠지만, 고양이에게 “이렇게 일렬로 죽 앉아봐” 한다고 “응, 알았어” 하면서 순순히 협조할 녀석들이 아니다. 고양이 조련사가 와도 그건 어려운 일이다.

어차피 연출은 새가 하는 것이므로 자작나무에 새가 날아오고, 그 순간에 맞춰 셔터만 누르면 일렬횡대로 앉은 고양이 사진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그런 순간을 포착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것도 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어차피 고양이 사진은 ‘운칠기삼’이다. 고양이는 풍경처럼 정지해 있지도 않고, 인물처럼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재주가 좋은 사진가도 고양이 앞에선 재능을 다하기 어려운 법이다.

이용한 고양이 작가

*‘이용한의 그냥저냥’이 앞으로 3주마다 한번식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용한 작가는 1995년 <실천문학>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 등 여러 권의 고양이 관련 책을 쓴 ‘고양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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