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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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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치어 업>부터 <곰 세 마리>까지 19대 대선 후보들의 로고송

한겨레21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아래)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로고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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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시에선 노래가 넘친다. 선거 로고송이다. 5월9일 치르는 제19대 대통령선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전국을 누비며 의미 있는 장소에서 시민들을 만나 자신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고 공약을 확산시킬 때, 선거 로고송은 늘 후보들의 배경음악(BGM)이 된다. 각 당이 선거 유세 차량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선거 유세 차량에서 후보 홍보 동영상이 방영되고 지지 호소 연설을 한다. 그리고 로고송을 튼다. 후보의 투표 기호를 되풀이해 강조하고, 주요 공약과 그것의 기대감을 압축해 보여주는 선거 로고송은 선거 기간에 가장 자주 사용되는 선거운동 방식이다.

음악, 3분의 강력한 언어

정치인들이 선거 로고송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의 특성과 매력 때문이다. 음악은 멜로디와 리듬, 화음, 사운드, 가사 등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말이나 글로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지만 음악언어는 훨씬 풍성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음악은 대개 3분 안에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구조와 언어로 최적화돼 있다. 좋은 멜로디와 리듬은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꽂히고, 유권자는 무의식중에 이를 따라한다. 그래서 3분 동안 말로 떠드는 것보다 노래의 힘을 빌리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게다가 소리는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날아간다. 선거 유세 차량의 화면은 차량 앞에서만 보이지만, 소리는 더 멀리 퍼진다. 그래서인지 선거 유세 차량이 로고송만 틀어놓는 경우도 흔하다. 선거운동원들이 휴식을 취할 때도 로고송은 쉬지 않고 선거운동을 하는 셈이다.

각 당에선 후보자의 스타일과 메시지, 주요 대상을 두루 고려해 로고송을 만든다. 요즘엔 다양한 연령층을 겨냥해 이들에게 다가가는 여러 곡의 로고송을 만들기도 한다. 로고송은 대부분 널리 알려진 노래를 개사한다. 대체로 리듬감 있는 신나는 노래를 선택한다. 그래야 잘 들리고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전달할 수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썼지만, 대부분 기존 곡을 사용한다. 후보자가 선거 로고송을 정한 뒤, 기존 곡의 창작자에게 허락을 받고, 저작권신탁단체에 신고해 저작권료를 납입하면 된다. 선거 로고송을 만들어주는 전문업체는 많다.

선거 로고송엔 후보들의 전략이 투영돼 있다. 우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히트곡의 힘을 빌린다. 특히 투표율이 높은 장년층과 노년층까지 설득하기 위해 동요나 트로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동요나 트로트는 가장 분명한 멜로디와 구조를 갖고 있어 노랫말을 붙이기 쉽고 따라하기도 쉽다. 중독성이 강해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 선거 로고송으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노래는 박상철의 <무조건>이다. 박상철, 박현빈, 홍진영의 노래가 자주 사용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홍진영의 <엄지 척>과 김수희의 <남행열차>를 함께 사용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귀요미송>, 박상철의 <무조건>, 박현빈의 <앗! 뜨거>, 동요 <비행기>를 로고송으로 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박현빈의 <샤방샤방>과 혜은이의 <파란나라>를 개사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후보의 <곰 세 마리>도 화제다.

로고송에 타깃 지지층 있다

반대로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정당과 후보자는 아이돌 팝을 개사한다. 문 후보와 유 후보가 트와이스의 <치어 업>(Cheer Up)을 개사한 이유다. 20~40대의 지지가 많은 문 후보는 DJ DOC의 <런투유>(Run To You), 코요테의 <순정>, 엄정화의 <페스티벌>, 인피니트의 <내꺼하자>를 로고송으로 함께 사용하면서 1990년대 세대까지 설득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젊은 감각을 부각하고 있다. 보수층을 공략하는 홍 후보가 마마무의 <음오아예>를 사용하고, 유 후보 역시 노라조의 <고등어>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래 자체가 특정 지지자를 명확하게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선택한 고 신해철의 <그대에게>와 <민물장어의 꿈>은 과거 노무현·문재인을 지지했던 신해철의 진보적 이력과 겹쳐지면서 노무현 지지자를 공략한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때까지 계속 광장에서 불렸던 세월호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선택한 이유도 명확하다. 주요 지지 기반이 촛불 시민과 겹치기 때문에 자신이 촛불 민심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점을 알리려는 전략이다.

[DJ와 함께 춤을] <상록수>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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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왼쪽)의 2002년 16대 대선 TV광고 촬영 모습.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97년 15대 대선 선거운동 모습. 노무현 사료관, 한겨레 곽윤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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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자들은 이렇게 고른 곡에 자신의 대표적인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녹여 표현한다. DJ DOC의 <런투유>를 개사한 문 후보의 로고송에선 “바꿔보겠어 정권교체 하겠어/ 일자리 만들어 공공고용 하겠어”라며 정권교체와 일자리 창출 의지를 함께 드러냈다. 반면 안 후보의 로고송이 된 <그대에게>는 원곡 가사를 크게 바꾸지 않고 “국민의 행복 안철수와 함께” 등의 구호를 넣었다. 홍 후보는 <귀요미송>에서 “지켜줘요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가사로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심 후보는 <붉은 노을>에 “과감한 개혁 적폐 청산/ 정의당 심상정 선택해/ 노동이 당당한 나라 내 삶을 바꿀 대통령”이라는 가사로 자신의 진보성과 선명함을 강조한다. 조원진 후보는 “곰 세 마리가 새누리에 있어/ 정희곰 근혜곰 원진곰/ 아빠곰은 위대해/ 근혜곰은 깨끗해/ 원진곰은 의리 사나이”라는 노랫말로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충심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메시지와 타깃층이 가장 명확한 사례다.

실제 잘 만든 선거 로고송은 백마디 말보다 낫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 때 김대중 후보가 사용한 DJ DOC의 [DJ와 함께 춤을]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경륜을 쌓았지만 전혀 참신하지 않았던 김 후보는 이 노래 하나로 자신의 젊은 감각과 열린 마인드를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 곡은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곡이었다. 신곡을 발 빠르게 사용하고, 김 후보의 약자인 DJ가 제목에 들어간 히트곡 [DJ와 함께 춤을]을 차용한 센스가 돋보였다. 게다가 악동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DJ DOC의 곡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파격적이었다. ‘준비된 대통령’ 이미지를 부각할 의도였다면 좀더 차분한 곡을 선택했을 법도 한데, 오히려 김 후보는 자신의 야성과 열린 감각을 DJ DOC의 노래로 드러내는 전략을 선택했다. 로고송을 넣은 뮤직비디오에 김 후보가 직접 출연하고 김종필, 노무현, 박태준까지 함께 등장함으로써 로고송의 파격성을 극대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김 후보는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1990년대에 어울리는 ‘문화 대통령’ 이미지를 단숨에 확보하고, 경쟁자 이회창 후보에 비해서도 역동적·개방적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했다. 젊은 유권자의 호감을 끌어내는 데 이 로고송은 지대한 공헌을 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상록수>를 빼고 선거 로고송을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다. 사실 이 곡은 선거 로고송이 아니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는 김민기와 양희은의 곡 <상록수>를 직접 부르는 모습을 선거광고에 담았다. 발단은 노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만남이었다. 당시 서울 대학로의 한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열린 유쾌한 분위기의 간담회에서 노 후보는 직접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불렀다. 문화예술인들 앞에서 구구절절 말하기보다 노래로 소통하며 자신이 상대의 언어로 말할 줄 아는 겸손하고 예술에도 관심 많은 후보임을 부각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자신이 딱딱한 이야기만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타를 치면서 노래할 수 있는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사람이라는 점, 특히 <상록수>로 대변되는 1970~80년대 포크·민중 음악의 올곧은 비판 정신을 체화한 후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실제 이 노래는 노래로만 향유되지 않았고, 진보적 세계관과 희망을 공유하는 이들의 징표로 사용됐다. 원숙하지 않아서 더 자연스러웠던 그날의 노래는 문화예술인들의 마음을 여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그 장면을 포착한 노무현 캠프는 기타 치는 대통령 후보의 모습을 선거광고로 확장했다. 선거광고에선 논리적 설득보다 감성적 접근이 더 중요하다는 것, 이제는 한국 사회가 돈만 많은 삶보다 문화적으로 윤택한 삶을 바란다는 것, 아울러 노무현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이 상록수처럼 올곧은 정치라는 사실을 적확하게 포착했다. 이 광고는 엄격할지는 몰라도 재미없어 보이는 상대 후보 이회창에 비해 노무현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했다. 5년 전 김대중의 선거광고와 로고송을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노래의 효과를 극대화한 순간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노무현을 생각할 때 <상록수>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그의 선거 로고송으로 이 노래를 기억한다.

1987년에도 있었다

선거 로고송이 1990년대 말부터 사용된 것은 아니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는 <아리랑> <빨간 마후라> 등의 노래를 개사했다. 김영삼 후보는 김도향이 작곡한 <우리가 그대와 함께 있음은>을 로고송으로 사용했고, 김대중 후보 역시 동요 <자전거> 등을 개사해서 사용했다. 로고송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다만, 예전에 견줘 선거 로고송의 비중이 훨씬 높아졌다는 사실에서 감성적 언어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시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선 어떤 로고송이 후보를 더 돋보이게 하는가. 어떤 로고송이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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