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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인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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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수필가

충청일보

[이향숙 수필가]어머니의 젓가락이 분주하다. 봄나물 덕분이다. 입에 맞으실 만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두리번거리다 인절미를 발견하고 접시에 수북이 담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인절미를 자주했다. 할머니가 밥보다 떡을 더 좋아하셔서다. 정성을 들여 떡을 해도 이삼일이 지나면 딱딱하게 굳게 된다. 어머니는 화로에 굽거나 솥뚜껑을 뒤집어서 기름을 두르고 이리저리 굴려 노릇하게 구어 주었다. 속은 쫀득쫀득하고 겉은 고소해서 쉴 새 없이 손이 간다.

봄이면 살고마니 고개를 내민 애쑥으로 쑥떡을 한다. 할머니는 조청에 찍어 드시며 당신은 덕을 쌓은 것도 없는데 며느리를 잘 두어 호사한다 하셨다. 할머니의 칭찬에 엷은 미소를 짓던 어머니가 정작 드시는 모습을 별로 보지 못했는데 얼마 전 지나가는 듯 말씀하셨다. 할머니께 한 번 더 드리려고 먹고 싶어도 참았단다. 그 말이 생각나서 욕심내어 한 접시 담았는데 어머니는 떡을 들었다 놨다만 하시지 도통 드시지를 못하신다. 가위로 더 잘게 자르고 얼음가루를 수북이 쌓아 팥과 꿀을 얹어 빙수를 만들어 드렸더니 맛나다며 접시를 비우신다.

오래 전 할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어머니도 평생 잘한 일도 없는데 구순이 되도록 건강하고 자식과 복된 날들을 보낸다 하신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인생은 인절미를 닮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보릿고개를 수도 없이 넘으셨다. 자식을 낳아 반타작을 하고 대를 이을 아들을 낳느라 외손자를 보고도 출산을 하셨다. 먹은 것 없이 뙤약볕 아래 호미질을 하고 등이 쩍쩍 갈라진 손으로 동창이 밝도록 베틀 앞에 앉아야만 했다. 그저 가족을 위해 절구통속에서도, 달구어진 솥뚜껑 위에서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견뎌내야 했던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의 삶이 비로소 담백한 인절미로 조청에 푹 찍어 달콤한 맛을 낸다.

충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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