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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팬들 위해 아들 곡 정리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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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故 권혁주 모친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

조선일보

지난해 8월 제주 여행을 함께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왼쪽)와 어머니 이춘영씨. /이춘영씨 제공


"혁주가 아홉 살부터 열한 살 사이에 작곡한 곡이 열 개쯤 있어요. 혁주를 아껴준 팬들을 위해 그걸 정리해 출판하는 게 앞으로 제가 할 일이에요."

바이올리니스트 고(故) 권혁주의 어머니 이춘영(59)씨가 2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는 '2017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상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씨는 "다른 분(수상자)들 자녀는 살아 있는데 혁주만 나랑 같이 있지 않으니…"라고 울음을 삼켰다.

이씨는 세 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찾아내고 지원했다. 문화부는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뒤에도 아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러시아 모스크바로 함께 이주해 음악 활동을 뒷바라지했다"고 수상 사유를 밝혔다.

권혁주는 지난해 10월 부산에 피아졸라의 '사계'를 연주하러 갔다가 택시 안에서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서른한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권혁주는 여섯 살에 음악저널 콩쿠르에서 최연소 대상을 받은 '바이올린 신동'이었다. 2004년 열아홉 나이에 칼 닐센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과로를 염려할 만큼 밤낮 연주를 소화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1995년 차이콥스키음악원에 등록한 다음 날 러시아 국영 TV에서 권혁주의 연주 장면을 촬영해갔다. 그 후 계속 방송에 나왔다. 권혁주가 유럽을 누비며 연주를 하면 이씨는 매번 동행했다. "만날 즐거워서 날 듯이 뛰어다녔던 순간"이다.

'차라리 날 데려가시지….' 이씨의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말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두 달 넘게 아무 기도도 할 수 없었다. 모자(母子)가 둘이서 손잡고 모스크바공항에 내렸던 순간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아홉 살 혁주가 무서운 속도로 바이올린을 익혀가던 그때 살림이 급격히 기울었어요. '혁주야, 러시아 갈래? 무서운 나라라는데?' 물으니 '응. 갈래. 엄마가 있잖아'라고 했죠."

오산 크리스찬 메모리얼 파크에 잠들어 있는 아들을 보러 엄마는 매주 '소풍'을 간다. "아들이 아직도 연주하러 집을 비운 것만 같다"고 했다. 이날 시인 박성우씨의 어머니 김정자(75)씨, 설치미술가 김승영씨의 어머니 박흥순(80)씨, 국악인 방수미씨의 어머니 구현자(72)씨, 연극 연출가 김태수씨의 어머니 조용녀(84)씨, 발레무용가 황혜민씨의 어머니 김순란(66)씨, 가수 김건모씨의 어머니 이선미(73)씨가 이춘영씨와 함께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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