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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경유차만 때리는 미세먼지 대책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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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차가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퇴출 위기에까지 놓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030년까지 경유 승용차 운행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공약까지 발표한 상태. 정부도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경유값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유에 대한 이 같은 압박은 과연 타당한 지적일까.

◇건설기계·발전소에서도 미세먼지 발생

정부는 작년 6월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수도권 초미세먼지 배출 기여도에서 경유차가 29%로 1위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달라진다. 사업장이 41%로 1위이고, 건설기계(17%)와 발전소(14%)가 뒤를 이었다. 경유차는 11%로 4위였다. 국립환경과학원과 한국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2008~2013년 수송 부문 경유 소비량과 경유차 등록 대수는 각각 6%, 21% 늘었지만 같은 기간 미세먼지는 오히려 33% 줄었다. 박장혁 바른정당 수석전문위원은 "경유차에 대한 유류세 인상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것"이라며 "경유차를 생계 수단으로 사용하는 서민이 많다. 건설 장비, 화물 트럭 등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지난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조선일보가 주최한‘대한민국 에너지정책, 미래를 논하다’토론회가 열렸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가운데) 사회로 현 정부 에너지정책과 각 정당 에너지 정책·공약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엔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 박장혁 바른정당 수석전문위원, 김제남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에너지 선진국인 독일을 봐도 경유차와 미세먼지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에 등록된 경유차는 2001년 636만대에서 2016년 1453만대로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경유차 비중은 15%에서 32%로 늘었다. 하지만 1995~2015년 수송 부문 미세먼지 배출은 65% 줄었다.

◇전기차 확대보다 에너지 믹스 개선 시급

정부는 지난해부터 전기차 등 친환경차 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2020년까지 신차 판매의 30%를 전기차 등 친환경차(150만대)로 대체하겠다는 것. 전기차는 2020년까지 25만대로 지금보다 40배 늘리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이는 미세먼지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단편적인 대책이라는 지적이 있다. 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따르면 국내 에너지믹스(발전원별 비율·energy mix) 전망을 보면, 석탄 화력 발전량이 2015년 36.6%에서 2020년 41.3%로 늘어날 전망. 현재 우리 정부는 발전 단가가 싼 전력부터 사용하기 때문에 석탄 화력 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사용을 늘릴 경우 그만큼 석탄 화력 발전이 증가하고, 미세먼지도 많아지게 된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믹스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전 세계 석탄 화력 발전 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조선비즈


◇세제 개편으로 에너지 소비 구조 바꿔야

전문가들은 에너지 세제 개편과 전기요금 현실화로 에너지믹스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 등유 가격은 1TOE(석유환산톤·1TOE는 1000만K㎈)당 1747달러로 전기료 1282달러보다 비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2차 에너지원인 전기가 1차 에너지원인 석유·가스보다 싼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 OECD 국가 평균은 등유가 1TOE당 1271달러, 전기가 2025달러다.

전기가 석유보다 싼 건 석유에 세금을 많이 부과하기 때문이다.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수송용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이지만, 환경과 교통혼잡 비용이 세금으로 부과된 휘발유 등이 국내 에너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8%에 달한다. 반면 석탄 화력 발전 원료인 석탄에 대해선 개별소비세와 부가가치세 등 2개만 부과된다.

전기가 1차 에너지보다 싸다 보니 전기를 과도하게 많이 쓰게 되고, 이게 발전 단가가 싼 석탄 화력 발전 비중 증가로 이어져 미세먼지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종수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불합리한 에너지 세제 구조로 급속한 전기화와 에너지믹스 불균형 문제를 초래했다"며, "올바른 에너지믹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환경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모두 고려한 '통합에너지세제' 관점에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에너지는 가치 중립적인 재화"라며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균형 있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 국민 후생과 국가 성장을 위한 정책 결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원형 기자(swh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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