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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터키 에르도안, 투표 끝나자 본색…`쿠르드 거점` 이라크 신자르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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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으로 '21세기 술탄(옛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쿠르드족 말살 정책의 첫발을 뗐다. '테러와의 전쟁' 명분으로 이라크와 시라아 국경을 넘었던 터키가 쿠르드족 박멸이라는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터키의 무차별 공습이 '인종 청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강력 비난했다.

터키 당국은 25일(현지시간) 이라크 북부 신자르 지역과 시리아 북동부 산악지대의 '쿠르드노동자당(PKK)'을 목표로 독자 공습을 벌여 최소 20여 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터키에 대항한 PKK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계에 대한 탄압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터키가 지난해 이라크, 시리아 내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국경을 침범한 것도 쿠르드족이 터키 자국 내 세력과 연계를 끊어야 한다는 게 속내다. 중동 분쟁에 터키를 끌어들인 미국은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마크 토너 국무부 대변인 대행은 터키군의 공습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에 그쳤다. 토너 대변인은 "이번 공습은 동맹군에 의해 승인되지 않았으며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우리를 돕는 세력의 불행한 사망도 야기했다"는 논평만 했을 뿐이다. 이번 터키군의 신자르 공습은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터키 정부는 신자르에 응집하고 있는 쿠르드족을 적대시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시리아 등 중동 분쟁 개입 명분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내걸었던 데도 이런 이유가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대 터키공화국의 기본이념인 '세속주의'가 아닌 이슬람주의로 국정 변화를 꾀하고 있다.

쿠르드족 움직임에 급브레이크를 거는 터키와는 구원(舊怨)이 많다. 수백 년간 오스만 제국의 일원이었던 쿠르드족은 우드로 윌슨 전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크게 고무돼 자치와 독립의 꿈을 품었다. 1920년 연합국과 터키 정부가 체결한 세브르 조약은 '쿠르드족이 원한다면 조약 발효 1년 이내에 완전한 자치권을 부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1923년 체결된 로잔 조약에서는 인위적 영토 구획에 의해 쿠르디스탄(쿠르드인들의 땅)이 분할돼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의 영토 일부로 강제 귀속됐다. 유전을 보유한 강력한 쿠르디스탄이란 국가를 원치 않았던 서구와 자국 영토의 4분의 1이 잘려나가야 하는 터키의 강력한 반대로 쿠르드 독립안이 무산됐다. 그동안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민투표 설득에서 쿠르드족을 적극 끌어들이는 '표리부동' 전략을 취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의 수도'로 불리는 터키 디야르바키르를 방문해 "이스탄불이 없는 터키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디야르바키르 없는 터키도 상상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대통령중심제 개헌 국민투표가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나오자 쿠르드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발 벗고 찾아간 것이다.

[장원주 기자 / 박의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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