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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블랙리스트에 '을사오적' 반발하자 위원회 없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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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응백 전 문예위 책임심의위원 증언…"文 지지연설한 연극 연출가도 지원 배제 대상돼"]

머니투데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관광부 장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인 하응백 씨가 재판을 마친뒤 나서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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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연설을 한 연출가를 포함한 특정 예술인들을 '문화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지원하지 말라고 지시한 정황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위원들이 "도장 찍으면 을사오적이 된다"며 반발하자 심의위원 제도가 아예 없어졌다고 한다.

하응백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책임심의위원은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열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예술인 1명당 1000만원씩, 총 100명에게 10억원을 지원하는 '아르코' 사업에서 다른 위원들과 누구를 지원할지 결정하는 일을 맡았다.

하 전 위원은 2014년 아르코 사업에 700~1000명이 지원했고, 2차 심사까지 지원 대상으로 102명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2015년 3월까지 최종 심사가 끝나야 했지만 절차가 지연되고 있었다고 한다. 하 전 위원은 이때 문예위 직원 2명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 전 위원은 이 자리에서 문예위 직원들로부터 "선정된 102명 중 18명이 일종의 검열에 걸렸는데 문체부가 강력하게 지시하고 있다"며 "위에 청와대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또 하 전 위원은 직원들로부터 "막으려 했지만 막을 수 없다"며 "아르코 사업을 무산시키려 하니 다른 심의위원들을 설득해서 18명을 빼고 (지원하는 방안에) 도장을 찍게 할 수 있겠냐"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하 전 위원이 "그 18명이 누구냐"고 묻자 직원들은 명단을 꺼내려 했다. 하 전 위원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명단을 보지 않겠다고 말했고, 이때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의 이름이 거론됐다고 한다. 하 전 위원이 이씨가 왜 지원 배제 대상이 됐는지를 묻자 문예위 직원들은 "잘 모르지만 문재인 지지 연설이 원인이 아니겠느냐"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하 전 위원은 "한 명이라도 문학 외적인 이유로 배제할 수는 없다"며 문예위 측과 실랑이를 했고, 문예위 측은 "그냥 도장찍지 말고 돌아가라"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 전 위원은 법정에서 당시를 떠올리면서 "'도장 찍으면 을사오적 된다'는 말도 나왔다"며 "누가 장난치는지 모르겠는데 정권 바뀌면 감옥갈 거라는 말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 전 위원은 "도장을 찍어버리면 저희가 결국 죄를 짓게 되는 것이고, 저희들한테 죄를 강요한 게 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그 사람들이 감옥가게 될 거라는 말을 했다"고 부연했다.

특검 측에서 "결국 당시 아르코 사업은 별다른 공고 없이 70명만 지원하기로 하고 끝나고 책임위도 없어지지 않았느냐"라고 묻자 하 전 위원은 "우연히 문예위 측과 통화할 일이 있어서 물어보니 이사회에서 해서 그렇게 됐다고 들었다"며 "심의위 제도 자체도 없어졌다"고 진술했다.

제도가 왜 없어졌다고 생각하는지를 묻자 하 전 위원은 "말을 안 들어서"라며 "책임위원 없이 심의하면 어떤 심의를 하는지 모르고, '장난'을 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지원배제 사건과 관련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라는 특검 질문에 하 전 위원은 "이런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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