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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부자만 오세요…공공성 발로 찬 씨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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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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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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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은행의 지금 태도는 자기네 입맛과 수익 전략에 안 맞는 고객한테는 거래를 끊으란 얘기지요. 일반 금융소비자가 대출 받거나 다른 거래를 하러 은행지점을 찾아야 할 때 시·도 경계를 넘어 씨티를 찾아가지는 않을테니까요. 소비자금융에서 수익이 잘 안 나오는 쪽은 사실상 사업을 접으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금융당국 고위 관계자)

씨티은행이 국내 시중은행 사상 전례가 없는 ‘지점 80% 폐쇄’의 실험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고객 차별’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융소비자들 사이에 지역·소득·정보 격차가 큰 상황에서 시중은행이 이른바 ‘부자 고객’만 상대하고 ‘돈 안 되는 고객’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려는 디마케팅(Demarketing) 전략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 라이센스로 영업하며
지점 80% 폐쇄
부촌지역 중심 WM센터
잔고 1천만원 아래면 수수료


최근 씨티은행은 올해 하반기 이후 점포를 126개에서 25개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 은행은 2004년 이후 200여개 점포망을 유지했으나 지난 2013~2014년 구조조정을 거쳐 120여개로 축소한 상태였다. 씨티은행 쪽은 “금융 거래를 분석한 결과 95% 이상이 은행 영업점 외 비대면 채널에서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재편 배경을 설명했다. 또 대면 서비스로는 자산관리 서비스인 웰스 매니지먼트(WM) 센터를 강화하고, 기존 영업점 이용 고객들에겐 모바일뱅킹과 기존의 콜센터를 대체할 고객가치센터 등을 통해 서비스를 유지하겠다고 덧붙였다. 모바일뱅킹이 대세가 되고, 올해 들어 인터넷전문은행이 잇따라 등장하는 상황을 대규모 점포 폐쇄의 근거로 내세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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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씨티은행의 실험이 지닌 성격은 ‘모바일 혁신 전략’보다는 ‘디마케팅 전략’에 가깝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디마케팅 전략이란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객을 밀어내는 마케팅 기법이다.

실제 씨티은행 노조 쪽은 “시중은행 라이센스로 영업을 하면서 보편적 금융 서비스 기능을 사실상 포기하고, 일반 고객을 쫓아내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점 폐쇄가 실행되면 광역시나 도 단위에 씨티 점포가 단 한곳도 없는 지역들이 줄줄이 생겨난다. 예컨대 충청남·북도,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 등이 그러하다. 비밀번호 오류 정정, 자영업자들이 받는 사업자대출의 연장 등 지점 방문이 필요한 기존 고객들 상당수가 시·도 경계를 넘어서야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모바일 혁신 내걸었지만
수익 도움 안 되는 고객 밀어내기
‘디마케팅 전략’
다른 은행들 주저하면서 솔깃



사실 일반 고객에 대한 선긋기는 지점 축소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씨티은행은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계좌유지수수료 제도를 도입했다. 6월 이후 신규 계좌를 개설할 때 잔고가 1천만원 미만으로 창구업무를 이용하는 경우 한달에 5천원의 수수료를 물린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계좌유지수수료뿐 아니라 잔고 5천만원 미만 고객한테는 웬만하면 면제하던 각종 수수료를 다시 부활시킬 예정”이라며 “서울(신문로)·청담·도곡·반포·분당 등 이른바 ‘부촌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할 ‘WM 센터’가 상대할 자산가 고객은 사실상 잔고 2억원 이상을 굴려야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여 나머지 고객은 밀어내는 전략에 가깝다”고 짚었다. 실제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보면, 예금상품이나 펀드투자 등으로 운용중인 금융자산(저축액)의 가구당 규모는 1분위(소득하위 20% 이내) 1627만원, 2분위 3408만원, 3분위 5053만원, 4분위 7819만원, 5분위(소득상위 20% 이내) 1억6801만원 수준이다. 결국 씨티은행 전략에선 많은 가구와 개인이 고객 배제와 차별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시중은행의 큰 흐름은 씨티은행과 유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중은행들은 지속적으로 돈이 안 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점포폐쇄 속도를 높이고 있다. 물론 수익성의 시선으로 봤을 때 비대면 채널의 발달로 지점과 인력 구조조정은 일정 수준 필요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은행산업이 예금자보호 제도 등 공적 시스템의 뒷받침을 받는 산업이고 시스템 위기 때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금융 공공성의 가치를 지나치게 홀대하는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올초 케이비(KB)국민은행은 일부에 계좌수수료를 물리는 방침을 검토했다가 일단 보류했다. 시중은행 지점수도 급격한 축소 추세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6개 시중은행의 지점 수는 2008년말 4302개에서 2016년말 3673개로 줄었다. 지점 6~7곳 가운데 한 곳이 없어진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2013년 이후 급격하게 점포 구조조정에 나섰고, 지난해부터는 수익이 많이 나는 자산가 고객 영업에 집중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미국은 특정 인종이 몰려 사는 특정 지역을 대출에서 배제하는 등 은행의 고객 차별과 수익 추구 전략 탓에 ‘지역재투자법’ 등으로 금융 공공성을 강제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시중은행들이 지금껏 보편적 서비스 기능을 수행했기에 이를 강제하는 법적 장치가 미비한 것도 사실이다. 씨티은행의 극단적 점포 폐쇄 전략에 대해서도 금감원 관계자는 “지점 폐쇄에 개입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다. 소비자보호 문제가 있으니 금융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의주시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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