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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강제노동 때 입은 화상에 여름철 반팔 옷도 못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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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피해 김영옥 할머니 법정 증언

뉴스1

광주지방법원 전경.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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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전원 기자 = "일본에 끌려가서 일하다가 생긴 화상때문에 지금도 여름철에 반팔 옷도 못입습니다"

광주지법 민사1단독 김현정 판사의 심리로 25일 열린 재판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영옥 할머니(84)가 자신이 겪어야 했던 강제동원의 아픔을 토로했다.

김 할머니는 1944년 당시 여수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미평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그에게 일본에서 돈을 벌고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은 큰 유혹이었으나 현실은 군수공장인 미쓰비시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강제 동원이었다.

미쓰비시 공장의 노동은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고됐다. 특히 지진과 폭격의 공포는 지금도 괴로울 만큼 끔찍한 기억이다.

하루는 폭격으로 인해 드럼통이 폭발하면서 기름과 납으로 인해 몸에 심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때 생긴 흉터 때문에 여름철에 반팔 옷을 입지 못하고 긴팔만 입을 수 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김 할머니는 항상 운동화를 신고 잤고, 담요를 항상 곁에 두고 폭격에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일본에서 귀국한 후에도 '몸 팔고 왔다'고 오해를 받을까봐 일본에 다녀왔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증언 마지막에 "보상이라도 나오면 죽기전에 가고 싶은데라도 가보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고 했다.

서울에서 거주하는 김영옥씨는 재판을 위해 광주에 오며 일본의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공동대표와 고이데 유타카(小出裕) 사무국장도 재판 방청을 위해 직접 광주를 찾았다.

다음 기일은 5월 30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한편 이번 재판은 김 할머니와 나주초등학교 졸업 후 미쓰비시로 강제동원됐다가 1944년 나고야 일대를 강타한 도난카이대지진에 사망한 고 최정례씨의 유족 이경자씨(1943년생)도 함께 재판을 진행 중이다.

이씨가 소송에 참여한 이유는 사랑하는 어린 딸을 잃고 평생 한을 품고 살았던 시할머니 때문이다.

이역만리에서 억울하게 딸을 잃은 이후로 이불조차 덮지 않았던 시할머니는 명절이면 억울하게 죽은 딸의 제사상을 차려 늘 대문 밖에 내놓았다.

이씨는 "시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며 "시할머니의 한과 시고모의 억울함을 대신해 이번 소송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ju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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