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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우보세]'리베이트 투아웃제'와 정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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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제네릭(복제약)을 만들 때 거쳐야 하는 과정에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라는 게 있다. 오리지널 약과 약효가 같은지를 비교하는 과정이다.

시험 방식은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쪽은 오리지널 약을, 나머지 한쪽은 제네릭을 투약한다. 투약 후 일정 기간이 지나 환자 혈액을 뽑아 혈액 내 약물이 얼마나 있는지, 약물이 얼마나 지속하는지 등을 비교해 따진다. 제약사들은 그래서 제네릭을 쌍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름만 가리면 뭘 복용해도 약효가 똑같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약을 개발한 제약사는 특허가 만료되면 여러 방법으로 특허연장을 시도한다. 주로 성분 중 일부나 약을 만드는 방법, 투약 방법 등을 살짝 바꾼다. 이어 별도 특허를 낸다. 쌍둥이(제네릭)들이 시장에 쏟아졌을 때에 대비해 또 다른 차별성을 두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이다.

오늘날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둘러싼 논란은 에버그리닝 전략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노바티스는 불법 리베이트로 글리벡 보험급여 중단 처지에 몰렸음에도 '글리벡 베타' 하나로 한국 사회를 쥐고 흔든다.

노바티스는 2013년 글리벡 특허 종료에 대비해 2018년 특허 만기인 베타형을 만들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글리벡 베타형과 알파형을 표방한 제네릭의 약효는 전혀 차이가 없다.

이는 처방 실적에서도 입증된다. 2013년 하반기부터 느리지만 제네릭 처방을 받는 환자들이 서서히 늘어 3년여만에 오리지널 시장의 5%를 대체했다. 접근법을 바꿔, 오리지널 약을 처방받던 환자들 입장에서 베타형이 우수하려면 기존 알파형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어야 했다. 과거 뉴스에서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노바티스는 오늘날 알파형을 판매하지 않는다. 제네릭들이 따라올 수 없는 영역으로 완전히 이동해 차별화 전략을 계속 구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환자들의 절규와 안절부절 못하는 정부를 보면 이 전략은 적중했다고 보여진다. 정부가 1억원 이상 리베이트 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문제가 된 의약품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1년간 정지시키는 '리베이트 투 아웃제' 기준을 만들 때 이런 일도 예상에 넣었어야 했다.

글리벡에 대한 보건복지부 처분은 단순히 한 외국계 제약사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보험급여 정지를 과징금으로 대체할 경우 앞으로 이어질 유사사례에 원칙대로 대응할 수가 없다. 처분 대상이 국내 제약사라고 하면 국적 차별이 될 것이고 병 종류에 따라서는 환자 고통의 정도를 정부가 마음대로 재단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정부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라도 제네릭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 환자 두려움을 덜어주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한다. 당장 욕을 먹기 싫다고 원칙에서 벗어나 편한 길을 택한다면 제2, 제3의 글리벡, 노바티스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 때마다 이유를 대가며 봐주기 처분을 해야 하는 지경에 몰릴 수도 있다. 그럴 바엔 리베이트 투 아웃제를 아예 없애는 편이 낫다.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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