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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초코파이, 하루 20개씩 15년간 먹고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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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브랜드 파워 지수' 2년 연속 1위… 초코파이 개발 팀장 강수철씨]

초콜릿 맛 제대로 보려 금연·금주… 3년 넘게 연구해 바나나맛 출시

나라별로 식감 다르게 해 판매도 "아프리카 아이들 위한 파이 만들 것"

요리사처럼 위아래로 하얀 작업복을 입은 강수철(43) 오리온 파이개발 2팀장은 "오늘 아침에만 초코파이 10개를 먹으며 관능(官能)했다"고 말했다. 관능이란 단어가 낯설게 들렸다. 식품업계에서는 기계로 평가하기 어려운 맛·향기 등을 혀와 코 같은 감각기관으로 가늠하는 일을 '관능 검사'라 부른다.

냉장고만 한 오븐이 8개 들어선 주방이 그의 일터다. 하루 평균 파이 20개를 먹으며 미묘한 품질을 확인한다. 커피를 권했지만 거절했다. "커피 쓴맛에 익숙해지면 초콜릿 쓴맛을 느낄 수 없어요. 담배 안 피우고 술은 토요일에만 가끔 마십니다. 맛있는 맛 만들어 먹고사는 사람이 어떻게 입맛 망치는 짓을 하겠습니까."

조선일보

강수철 오리온 파이개발 2팀장은 1974년 출시된 초코파이와 나이가 같다. 15년간 파이 품질을 관리해온 그는“소비자는‘부드럽다’고 단순히 표현하지만 개발자는 수분·기름성분·초콜릿·마시멜로 함량 등에 따라 30가지 부드러움을 구별한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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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팀장은 15년간 매일 파이를 먹고있다. 팀원 7명과 함께 파이 8개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고 신제품도 개발한다. 세계적으로 한 해 20억개 이상 팔리는 초코파이가 단연 주력 상품이다. 지난 18일 초코파이는 '중국 브랜드 파워 지수' 파이 부문에서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국내 제과 브랜드 중 유일하다.

그가 개발을 주도한 초코파이 바나나맛은 지난해 3월 시장에 나왔다. 1974년 초코파이가 생긴 지 42년 만의 첫 신상품에 대중은 열광했다. 그해 11월 '말차맛'도 내놨다. 이 후광에 힘입어 초코파이는 지난해 국내 포함 글로벌 매출 4820억원을 올리며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제 나이쯤 되면 초코파이에 향수가 있어요. 배고팠던 시절에 든든한 행복감을 주는 간식이었거든요. 지금은 먹을거리가 다양해져 그런 느낌이 없어요. 어떤 가치를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늘 고민해요."

바나나맛 연구 개발에 3년이 걸렸다. "가격 대비 효용을 높여 크기를 키워야 하나, 웰빙 열풍이니 칼로리를 줄여야 하나.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초코파이 특성을 잘 살려 새로운 맛을 만들기로 했죠." 초콜릿과 가장 어울리는 맛을 찾아야 했다. 사과·배·자몽·오렌지 같은 과일을 비롯해 너트류·우유 등 온갖 재료를 파이에 넣었다 뺐다 했다. 2년 시행착오 끝에 바나나가 낙점됐다. 자연스러운 맛을 내려면 실제 바나나 원물(原物)을 이용한 재료를 찾아야 했다. 아프리카·유럽·아시아 등지 20여 개 업체에서 표본을 받아 최적의 맛을 뽑아냈다.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말자'가 팀의 좌우명이다. "소비자 입맛 속이는 짓은 안 해요. 값싼 원료 안 씁니다. 첨가물 최소화하고 들어가는 모든 원료를 내 집 주방보다 깨끗하게 관리합니다."

60개국에 수출되는 초코파이 품질을 6개월마다 개선하는 일도 그의 임무다. 팀원들은 그를 '오케스트라 지휘자'라 불렀다. 제품이 글로벌화돼 기본 레시피는 같아도 26가지 원료를 선정하고 배합하는 비율은 나라마다 다르다. "사람 입맛이 다 다르죠. 베트남같이 더운 나라 사람들은 부드러운 거 싫어합니다. 초콜릿이 녹는 온도를 높게 만들어야 안 질척거리고 손에 묻어나질 않죠. 추운 러시아에선 거꾸로예요. 낮은 온도에서 부드럽게 녹는 파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초코파이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라 했다. "수출 국가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입니다. 베트남에선 고급 과자 취급을 받으며 제사상에 오를 정도래요. 저는 아이들 손에 초코파이 들려 있는 모습을 볼 때 제일 행복해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도 제가 어릴 적 초코파이 하나로 느꼈던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 저렴하면서도 더운 날 손에서 안 녹고 입에선 잘 녹는 맛있는 초코파이. 그거 만들 거예요."



[이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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