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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사설] '北에 물어보고 기권' 선거 前에 판명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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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김정일에게 의견을 물어본 뒤 '기권'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1일 이를 뒷받침하는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송씨가 노 대통령에게서 받은 것으로 북한 입장이 적힌 청와대 문서라고 한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북의 반응을 타진하는 과정을 주도했다는 것이 그간 송 전 장관 주장이었다. 이는 정치적 논란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 노 정권이 김정일에게 인권결의안에 대해 물어본 이유와 과정, 여기에 문 후보가 개입한 정도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다. 반대로 이 전체가 사실이 아니면 문제를 제기한 측이 책임을 져야 한다.

송 전 장관이 공개한 문서엔 '남측이 반(反)공화국 세력들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북남 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위반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북한 측 입장이 담겨 있다. 송 전 장관이 이 문서를 노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날이 2007년 11월 20일이었다. 다음 날인 11월 21일 우리는 북한 인권결의안에 기권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11월 20일 밤에 기권으로 결정됐다. 최근 남북관계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었다. 문 후보가 해온 설명보다는, 노 정권이 북측의 입장을 물어본 뒤에 북이 강경하게 나오자 기권하기로 했다는 송 전 장관의 말에 수긍이 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11월 16일에 이미 인권결의안에 기권하기로 결정 났으나 송 장관이 찬성해도 북한이 반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11월 18일에 실제 그런지 국정원을 통해 북의 입장을 알아보자고 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처음부터 '기권'이었으며 북에 물어보고 찬성에서 기권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그렇다면 왜 당시 청와대는 문 후보 주장처럼 북에 물어보기 전인 11월 16일이 아니라 북에 물어본 후인 11월 20일에 기권 방침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는가. 문 후보가 밝혀야 한다.

문 후보는 '북에 물어본 것이 아니라 (기권 방침을) 사후 통보한 것'이라고도 한다. 기권 방침을 통보했는데 북이 왜 '찬성하면 북남 선언 위반' '찬성하면 북남 관계에 위태로운 사태' '우리는 남측 태도를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위협했는지도 의문이다. 상식적으로는 북이 '잘했다'고 해야 한다. 이 역시 문 후보가 설명해야 한다.

문 후보의 말이 달라진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 후보는 처음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최근 1차 TV 토론에선 송 전 장관 주장이 거짓이라는 식으로 답했다. 다시 2차 토론에서는 "(북한에 물어봤다는 것은) 정확한 말이 아니고 국정원 정보망을 통해 북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반응을 파악해 본 것"이라고 답변했다. '반응을 파악해 본 것'과 '물어본 것'은 크게 다를 수 없는데 왜 송 전 장관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송 전 장관도 이에 반발해 문건을 제시하고 "문 후보가 직접 대답해야 한다"고 했다. 문 후보는 지난 2월에는 또 다른 말을 했다. 한 TV에서 "북이 반발하지 않으면 찬성으로 가야 되는데… 국정원이 '반발이 심할 것 같다'고 해 다시 기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찬성할 수도 있었는데 북이 반발해서 기권한 것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북에 물어보고 기권한 것'이 아닌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유엔 북 인권결의안 처리를 놓고 인권 범죄 집단인 북 정권의 입장을 타진했다는 그 자체에 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인간 이하로 짓밟고 있다. 그 인권 유린을 개선하라는 국제사회의 결의안에 대한민국이 기권했다는 것도 황당한 일이다. 노무현 정부 5년간 다섯 번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북이 1차 핵실험을 한 2006년을 빼고 모두 불참 또는 기권했다.

이런 사람들이 '진보'라고 하는데 이 세계에 인권을 경시하고 무시하는 진보는 대한민국에만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반응까지 미리 알아보았다.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북한이 싫어하는 일에는 알아서 피할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북핵·미사일이 완성 단계로 가고 미·중이 얽힌 한반도 정세 속에서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송 전 장관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북한에)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 문 실장이 물어보라고 해서, 송 장관 그렇다고 사표는 내지 마세요'라고 했다는 수첩 메모도 공개했다. 그런데도 문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 "제2의 북풍(北風) 공작" "비열한 색깔론"이라고 하고 있다. 문 후보는 안보 문제에서 불리한 일이 불거질 때마다 무조건 '색깔론' '안보 장사'라고 한다. 중대한 사안을 두고 사실 관계를 다투는데 무슨 '색깔론'이고 '안보 장사'인가. 정치 공방으로 만들 일이 아니다.

문 후보는 "우리에게 증거 자료가 있고 국정원에도 (북에 보낸 전통문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공개하는 데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워낙 중대한 일인 만큼 다소의 법적 문제를 감수하고라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에 물어보고 기권한 것인지 여부는 대선 투표일 전에 밝혀져 유권자들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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