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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편집자 레터] 시오노 나나미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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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어수웅·Books팀장


이번 주 시오노 나나미(80)의 신간 '그리스인 이야기1'(살림·전 3권 예정)이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전 15권)와 '십자군 이야기'(전 3권)등 박진감 넘치는 필력으로 국내에서도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작가. 동시에 함께 떠오르는 불편한 기억도 있습니다. 지난 2014년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 기고문 때문이죠.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던 네덜란드 여성을 강제로 일본군위안부로 삼은 소위 '스마랑 사건'과 관련, 작가는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백인 여성을 위안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구미(歐美)에 알려지면 치명적이므로 정부 차원에서 대처하고 회피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이미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죄한 사건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또 위안부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네덜란드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겪은 우리 입장에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죠.

3년 만의 신간이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소개할 수는 없었습니다. 50년 넘게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냈죠. 물론 단순히 당시 논란에 대한 작가의 해명만이 궁금했던 건 아닙니다.

오늘 Books 커버스토리인 '폭정' 서평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우리가 역사를 읽고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요즘 세계 각국은 역지사지(易地思之)는커녕 그나마 지녔던 안목과 아량조차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를 떨치기 힘듭니다. 역사는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세계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근심이 많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더욱 궁금합니다. 민주주의가 탄생한 시공(時空)으로 찾아가는 여정이니까요. 기원전 6세기의 도시 국가 아테네가 중심이더군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이 충돌할 때, 전체주의가 민주주의를 윽박지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기원전 6세기의 아테네·스파르타와 2017년 한국·일본의 간극은 얼마나 멀고 가까울까요. 22일까지 답변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솔직한 대답이 궁금합니다.



[어수웅·Books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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