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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섭의 세상을 상상하는 과학] 어린 시절 '불주사'의 추억… 함께 맞아야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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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조선일보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필자의 왼쪽 어깨에는 어린 시절에 맞은 '불주사'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결핵 예방 백신인 BCG 균주를 주입한 흔적이다. 일회용 주사기 비용을 아끼기 위해 주사기를 불에 그슬려 소독해 썼다. 지금까지도 양호 선생님께서 알코올 램프에 불을 붙이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어린 나이에 꽤 강렬한 기억이었다.

1960년대까지 한국은 '결핵 왕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강력한 결핵퇴치 사업이 성과를 거두면서 이제는 거의 퇴치되다시피 했다. 불주사 자국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몸에 새겨진 증표이다.

특정 질병에 대한 면역은 개인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집단의 특성이기도 하다. 내가 백신을 맞음으로써 면역을 형성하게 되면 질병의 추가적인 전파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집단 구성원의 일정 비율 이상이 백신을 맞게 되면 질병의 유행을 억제할 수 있게 된다. 면역을 형성한 사람들의 몸이 질병에 대한 집단적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백신을 맞는 행위는 자신의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좀 더 중요하게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의무이다. 질병에 취약한 계층이 일반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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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성찰을 담고 있다. 예방 접종이란 내 몸을 자발적으로 질병에 노출하는 행위이므로 근본적으로 두려움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예방의학의 역사는 이러한 행위를 과학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내 몸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 생기는 것도 일견 이해할 만하다. 한국에서도 2006년에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이 설립되어 활동 중이다. 이 모임은 백신의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법적으로 정해진 필수 예방 접종을 거부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양심적 거부자'들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백신 반대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는 H1N1이라는 이름의 '신종플루' 대유행부터 사스(SARS)와 메르스(MERS) 등 새로운 전염병에 대처해 왔다. 백신에 대한 공포와 불신, 또는 단순한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집단 면역 형성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공동체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과학적 의학은 우리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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