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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은 왕이 베푸시고 罰은 제가 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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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불위·왕망·역아·한명회 등 韓中 역대 왕조 간신 탐구

본심 숨기고 주군 신뢰 얻은 뒤 국정 농단하며 사리사욕 추구

"왕정에선 군주가 간신 판별… 민주정에선 시민이 정치 참여해야"

조선일보
간신(奸臣)

오창익·오항녕 지음|삼인|284쪽|1만4000원

국정 농단(壟斷)하는 간신(奸臣)을 얕보지 말 것. 이들은 조심스럽게 현재 권력을 장악하고, 주도적으로 미래 권력을 설계한다. 간신이 염소수염을 하고 권력에 빌붙기만 하는 기생충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춘추' '자치통감'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 나오는 중국 역대 왕조와 고려·조선의 간신을 탐구해 책을 펴낸 오항녕(56) 전주대 교수(역사문화콘텐츠학과)는 "간신은 단순한 모사꾼이 아니라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인맥 네트워크를 확보한다"며 "간신은 왕정과 민주정을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간신은 치밀하다. 잘 알려진 대로 여불위는 조나라에 인질로 온 진나라 효문왕의 아들 자초에게 자신의 여인을 바쳐가며 접근한다. 이어 효문왕이 총애하던 화양부인의 친척에게 뇌물을 바쳐 20명이 넘는 아들 중 자초가 왕위를 계승하도록 꾸민다. 전국(戰國)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백만대군으로 공격해도 차지하지 못했던 진나라를 여불위는 장장 20년이 넘는 계략으로 얻어냈다. 한(漢)나라를 전한과 후한으로 나뉘게 한 장본인 왕망은 성제, 애제, 평제 3명의 황제를 모신 뒤에야 나라를 찬탈한다. 광무제가 후한을 회복하기까지 그는 신나라의 황제로 군림했다. 오 교수는 "왕망은 간사하고 위선적이었지만 당장 보기에는 청렴하고 아무런 욕심이 없는 사람처럼 행세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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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의 간신 역아(易牙)는 주군 제환공이 입맛을 잃었다고 하자 세 살배기 아들을 삶아 바쳐 환심을 샀다. 권력을 탐하며 인륜을 저버린 역아는 제환공을 밀실에 감금하고 다른 간신 수초·개방과 권력 다툼을 벌인다.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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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주군을 받드는 것처럼 연출하고 연기한다. '보스'의 속마음을 보스보다도 더 잘 알아야 한다. 왕이 정치를 싫어한다. "덕을 베푸는 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니 임금께서 하시고, 형벌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니 신이 행하겠습니다."(제나라 전상) 황제가 주색잡기에만 관심이 있다. "검소하고 절개가 있으며,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 조정에 있으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즐거움은 끝장입니다"(진나라 이사) 황제가 황후를 바꾸고 싶어한다. "시골에 살면서 열 말을 수확하는 사람도 부인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황후 하나 세우는 것이 무슨 문제겠습니까"(당나라 허경종)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이들에게 권력자들은 '기꺼이' 국정 운영을 맡겼다.

사리사욕을 드러내면 주군이 경계할 것은 당연지사. 혈육의 정을 끊고 사리사욕이 없음을 증명하는 극단적 선택도 마다치 않는다. 제나라 역아는 제환공이 입맛을 잃었다고 하자 자기 자식을 삶아다 바쳤다. 제환공은 이후 그를 굳게 믿었고 재상 관중이 사망하자 역아에게 국정을 맡긴다. 관중은 죽기 전 역아에게 국정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제환공은 듣지 않았다. 연산군 시절 간신 임사홍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가 주도한 갑자사화에 그의 셋째 아들이 휘말린다. 그는 연산군의 신임을 얻기 위해 아들이 처형당하는 날 집에서 연회를 열고 풍악을 울렸다.

그러고는 언로(言路)를 통제한다. 자신을 탄핵하는 상소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요소요소에 같은 패거리를 심고, 전국에서 상소를 보내 자신을 칭송하는 것처럼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대다수의 군주는 간신의 국정 농단 속에서도 나라가 태평성대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이들은 권력을 가졌고 재산을 착복했다. 일부는 끔찍한 죽음을 맞았지만 사마의나 한명회처럼 천수를 누린 자도 많다.

왕조시대, 간신을 구별하는 눈은 군주에게 필요했다. 민주사회에서 간신을 구별하는 일은 시민의 몫이다. 평범한 사람은 상상하지 못할 큰 그림을 그리고, 인륜마저 때로는 저버리는 '간신'을 상대하는 법은 뭘까. 옛날 간신은 국왕이 정치에서 손을 뗄 때 활개치기 시작했다. 현대엔 정치혐오에 빠진 시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질 때, 언론이 정권을 매섭게 견제하지 못할 때 간신들이 암약할 것이란 뜻. 오 교수는 "간신은 한 사람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며 "권력과 가까운 자들의 행태와 본질은 왕조시대나 민주주의 시대나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간신은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고 농단을 막기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수천년 동안 등장한 간신 수십명을 열거하다 보니 논의가 때로 산만해진다. 간신이 국정을 농단하게 용납한 국왕의 잘못도 클 터인데, 간신에만 초점을 맞춰 다소 평면적인 분석에 그치는 점은 아쉽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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