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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Tech & BIZ] 인터넷 선물한 선구자들… 필요에 의한 발명이 세상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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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PC 발명 테일러

원거리의 컴퓨터 케이블로 연결… 인터넷 전신 만들어'

웹의 아버지' 버너스 리

웹 페이지 만드는 규칙·프로그램 발명해… 네트워크 비효율 개선, 인터넷 대중화 이끌어

우리는 두 종류의 세상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첫 번째는 138억년 전 우주대폭발(빅뱅)로 만들어진 현실 세계, 두 번째는 불과 수십 년 전 인류가 직접 만들어낸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이다. 이 가상 공간을 창조해낸 조물주(造物主)는 누구일까.

지난 14일 외신들은 이 질문에 답을 주는 부고 기사를 일제히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인터넷의 탄생에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기여했지만 그 누구도 12일 세상을 떠난 로버트 테일러보다 많은 지분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로버트 테일러는 웹(web)의 아버지로 불리는 팀 버너스 리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와 함께 인터넷을 우리에게 선물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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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을 만들어낸 미국 공학자 로버트 테일러(왼쪽).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웹(web)을 만들어 인터넷 대중화에 기여한 팀 버너스리 MIT 교수 / 유럽입자물리연구소·TE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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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PC·마우스의 발명가 테일러

1932년 태어난 테일러는 미국 텍사스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1960년대 초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입사했다. 당시 그는 공동연구를 진행하던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아르파·ARPA)의 컴퓨터 연구 프로젝트에 매료됐다. 1965년 아르파 정보처리기술 부서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시도에 나섰다. 당시 아르파는 매사추세츠 보스턴과 캘리포니아의 버클리·샌타모니카에 흩어진 3개의 컴퓨터 시스템을 관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3대의 컴퓨터는 각각 워싱턴에 있는 아르파 본부하고만 연결돼 있었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역할 분담도 쉽지 않았고 정보 공유도 되지 않았다. 테일러는 생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아르파 소장이었던 찰리 헤르크펠트를 찾아가 세 컴퓨터 시스템을 서로 연결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자 곧바로 승인해줬다"면서 "100만달러의 예산을 미사일 방어체계 연구에서 빼내 네트워크 연구에 배정해주는 데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테일러는 케이블로 컴퓨터끼리 연결했고, 이 네트워크를 '아르파넷(Arpanet)'이라고는 이름 붙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터넷의 전신(前身)이 탄생한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테일러는 아르파넷 탄생 5년 뒤 미국 팰로앨토의 제록스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마우스와 모니터, 키보드를 갖춘 개인용 컴퓨터(PC)의 초기 모델 '앨토'를 개발했다.

NYT는 "당시 연구소를 견학 온 젊은 창업자가 앨토를 보고 즉석에서 새로운 개념의 PC 디자인을 스케치했다"고 밝혔다. 이 젊은이가 바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였고, 몇 년 뒤 애플은 최초의 상업 PC로 불리는 '리사'를 내놨다.

테일러는 '마우스'의 탄생에도 크게 기여했다. 1961년 NASA 근무 시절 스탠퍼드대의 젊은 과학자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그래픽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입력 도구를 제안하자 연구비를 지원하고 함께 제품을 만들었다. 엥겔바트는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이 발명품을 처음 공개하고 '마우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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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가 1970년대 개발한 초기 PC ‘앨토’를 집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 유럽입자물리연구소·TE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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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대중화에 기여한 팀 버너스리 MIT 교수가 처음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데 사용한 컴퓨터 서버이다. / 유럽입자물리연구소·TE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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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대중화 이끈 WWW의 탄생

테일러가 인터넷의 아버지라면 영국 출신의 팀 버너스 리는 누구나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세상을 열었다. 테일러가 아르파넷을 처음 선보인 뒤 각국 정부와 연구소, 대학들은 컴퓨터 네트워크 구축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20년 넘게 컴퓨터와 컴퓨터를 직접적으로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기만 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버너스 리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일하면서 컴퓨터 네트워크의 비효율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1만명이 넘는 과학자가 일하는 CERN은 거대한 가속기에서 나온 실험 결과와 계산 자료가 넘쳐났다. 툭하면 자료가 유실되기 일쑤였고 누구의 컴퓨터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도 알기 힘들었다. 1989년 버너스 리는 링크를 클릭하거나 주소를 쳐 넣는 것만으로 가상공간인 웹(web·거미집) 페이지를 이동할 수 있는 규칙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이 네트워크는 마치 거대한 거미줄과 집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의미에서 '월드 와이드 웹(WWW)'이라고 불렸다. 웹 페이지를 만드는 규칙인 'HTML', 원하는 웹 페이지를 검색하는 규칙인 'HTTP', 인터넷 주소를 정하는 규칙 'URL'도 모두 버너스 리의 발명품이다. 이때 탄생한 세계 최초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CERN의 소개 사이트(http://info.cern.ch 였다.

이후 버너스 리는 MIT로 자리를 옮겨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을 만들어 인터넷 표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인터넷 보급을 이끌었다.

미국 컴퓨터학회(ACM)는 지난 4일 버너스 리를 컴퓨터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비킨 핸손 ACM 회장은 성명을 통해 "웹의 탄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버너스 리 이전의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터넷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는 인터넷 세상을 어떻게 평가할까. 버너스 리는 지난달 웹 탄생 28주년을 맞아 발표한 공개서한에서 "누구에게나 접근이 허용되고 어디서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며, 장벽을 넘어 화합할 수 있는 꿈을 꾸었고 웹은 이 기대에 부응했다"면서 "다만 최근 새로운 흐름을 보면서 점점 큰 우려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버너스 리가 지적한 우려는 가짜뉴스, 개인 정보 유출, 비윤리적인 온라인 정치 광고였다.

[박건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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