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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공포’의 리더십을 넘어 ‘공감’의 리더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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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의회의 건물보다는 시민들의 문화관을 먼저 짓고

우람한 경기장보다 도서관 더 크게 세우는” 대통령 원한다

중앙일보

정여울 작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한 대통령 후보에게 ‘주적을 밝히라’는 또 다른 대통령 후보의 공격적인 태도를 보면서, 여전히 공포와 증오를 통해 권력을 확보하려는 뿌리 깊은 악습을 발견한다.

이렇게 대중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 여론몰이를 하려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 바로 ‘fearmonger’, 즉 공포 유발자 또는 공포로 돈벌이를 하는 장사꾼이라는 단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공포를 과장하거나 불확실한 루머를 사실처럼 퍼뜨려 ‘우리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 대중의 증오와 분노를 격발시키는 심리조작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매카시즘 광풍, 우리나라의 대선 때마다 일어나는 색깔론 시비가 바로 그것이다. 공공의 정의와 행복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권력이 아니라 ‘멀리 있는 피상적인 적’을 이용해 ‘가까이 있는 구체적인 적’을 제거하려는 비겁한 꼼수가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마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극심한 미세먼지가 ‘숨 쉴 권리’마저 위협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이런 낡은 공포 유발의 정치가 아니다. 우리는 가상의 공포를 날조해 권력을 장악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위험 앞에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대통령을 원한다. 2010년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33인의 광부가 갱도에 갇혀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열 일 제치고 현장으로 달려가 팔을 걷어붙이고 앞장서 광부들을 구해 냈다.

왜 우리는 이런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우리는 수백억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서민대통령이라고 우기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내는 세금의 사용처를 정확히 알리고 더 위급한 곳에 세금을 쓸 줄 아는 투명하고 공정한 지도자를 원한다. 우리는 증오의 난타전으로 얼룩진 대선후보 토론회가 아니라 누가 더 훌륭한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멋진 후보들의 수준 높은 정책 경쟁을 보고 싶다.

고(故) 김남주 시인은 ‘대통령 지망생들에게’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 지망생들이여/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나니/고민일랑 말거라 대머리라고/가발술이 와서 귀밑까지 덮어줄 것이다/실망일랑 말거라 곰보딱지라고/화장술이 와서 반반하게 골라줄 것이다/절망일랑 말거라 말더듬이라고/웅변술이 와서 유창하게 떠들어줄 것이다/근심일랑 말거라 뱃속이 시커멓다고/조명술이 와서 하얗게 칠해줄 것이다/걱정일랑 말거라 평판이 나쁘다고/조작술이 와서 여론을 바꿔줄 것이다/낙담일랑 말거라 청중이 안 모인다고/동원술이 와서 긁어모아 줄 것이다.” 1989년에 나온 『사랑의 무기』라는 시집에 실린 시인데, 어쩌면 수십 년이 지나도 이토록 오늘날과 똑같을까. 촛불시민의 의식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했는데, 정작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함과 뻔뻔함은 이 시대보다 더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그래도 우리는 절망하거나 포기해선 안 된다. 눈에 보이는 진흙탕 싸움이 아닌, 더 나은 진심과 공감의 힘을 내면에 품고 있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임보 시인의 ‘우리들의 대통령’에서처럼 우리는 “수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비상등을 번쩍이며 리무진으로 대로를 질주하는” 과시형 대통령이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즐겨 오르는” 성찰과 사색을 소중히 여기는 대통령, “아무도 몰래 어느 소년 가장의 작은 골방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는” 공감과 배려의 소중함을 아는 대통령, “말 많은 의회의 건물보다는 시민들의 문화관을 먼저 짓고, 우람한 경기장보다는 도서관을 더 크게 세우는” 대통령을 원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 예술인들을 더 괴롭히는 대통령이 아니라 “가난한 시인들의 시집도 즐겨 읽고, 가끔은 화랑에 나가 팔리지 않은 그림도 더러 사주는” 멋쟁이 대통령을 원한다. 이제 인간뿐 아니라 자연의 생태까지 배려하는 대통령, 국민을 쥐락펴락 제멋대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대통령,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나 ‘헬조선’ 같은 끔찍한 유행어는 우리 마음속에서 깡그리 지워 버릴 대통령을 원한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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