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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대학생 칼럼] ‘밀당’의 고수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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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자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그대 오직 그대만이 내 첫사랑, 내 끝 사랑.’ 노래방에서 가수 김범수의 ‘끝 사랑’을 부르며 남자친구와 헤어진 슬픔을 날려 보내곤 했다. ‘끝’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던 시절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이 다 이런 거지’라고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사실 가사의 맥락은 이게 아니었다. 상대에게 먼저 이별을 고한 연인이 ‘내가 끝내자고 말했지만 혹시 당신이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미련을 끊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먼저 상처를 주고도 내심 예전으로 돌아가길 꿈꾸다니 참 이기적이다.

이것을 깨달은 뒤 나는 상대에게 먼저 ‘끝’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서다. 대신 ‘끝’이라는 말을 듣는 입장이 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난 ‘끝’을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으로 받아들였고 쿨하게 이별을 수락했다. 상처를 감추고 ‘난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며 성숙해진 것은 ‘끝’이란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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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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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밀당(밀고 당기기)’이 꼭 사람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국가 간에도 끊임없이 상대의 마음을 떠보는 외교전이 벌어진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동만 봐도 그렇다. 그는 오랫동안 대중외교에서 고수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겠다며 중국에 큰소리쳤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관계를 끝내자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강경하게 반발하자 트럼프는 없던 일로 하자며 중국을 달랬다. 그 뒤 정상회담이 열렸고, 사드와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양자 간 모종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누구보다 활발히 주변국들과 밀당을 벌여야 할 나라가 말이다. 특히 중국과 그렇다. 한국과 중국의 25년 외교 관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둘 중 누구도 ‘끝’이란 말을 꺼내지 않지만 중국은 ‘한국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며 경제 제재를 가하는 중이다. 한국은 중국이 ‘이만 끝내자’는 소리를 할까봐 노심초사할 뿐이다. 어떻게든 이별을 피하려고 발버둥 치는 연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달릴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게 밀당의 법칙이다. 때론 ‘끝’이라고 먼저 얘기할 수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 그래야 상대방도 나를 다시 보기 마련이다. 여유 있는 당찬 대응이 ‘밀당’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박자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 대학생 칼럼 보낼 곳=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www.facebook.com/i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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