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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임마누엘 칼럼] 한국에는 기술보다 과학적 사고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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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의 쇠퇴는 사회적 문제

과학적 접근법이 정책의 중심 돼야

세상에 대한 관심과 토론 사라지면

기술의 미래는 황무지가 될 것이다

중앙일보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오늘은 ‘지구의 날’이다. ‘과학을 위한 행진’이 부산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진행된다. 과학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행사다.

한국인들은 내게 한국이 이룩한 최신 기술을 자랑한다. 혹은 다른 나라들이 지배하는 기술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나는 10여 년 동안 한국의 연구기관들과 협업했고 한국 사회를 관찰했다. 그 결과 나는 한국에 가장 심각한 도전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의 쇠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새로운 자동차나 로봇은 한국인들에게 뭔가 기적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접근법은 기술적인 성취에 대한 경외감을 불어넣지만 기존의 사고에 안주하게 만들고 비판적인 분석 능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시민들은 스마트폰이나, 정부나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뉴스 방송은 시청자들이 재미없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며, 복잡한 주제도 단순화시켜 한 줄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물론 짧은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은 최첨단이다. 탁월한 광대역 서비스 덕분에 한국인들은 첨단 스마트폰으로 프로그램 영상을 즉각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 한국 엔지니어들은 그들의 전전두엽피질을 사용해 엄청난 사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메시지가 전달되는 곳은 감정적인 반응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대표하는 원시적인 뇌다.

한국인들은 교육·매체·정책결정에 과학적 방법을 엄격히 적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과학적 방법론은 우리가 주변 세상을 신중하게 관찰해 가설을 설정할 것을 요구한다.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런 다음 우리는 가설이 일관성 있게 딱 들어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통해 가설을 검증한다. 가설이 검증되면 우리는 물리적인 세계, 우리 사회, 우리 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 원리를 수립할 수 있다.

하지만 매체들은 시청자들에게 그들이 미리 만들어 놓은 해석을 제시한다. 사안의 복잡성에 대한 논의는 다루지 않는다. 프로그램은 미리 결정한 감정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다.

중앙일보

만약 기술 장치들을 사용하는 방식이 우리들을 거버넌스나 경제의 이해를 위한 과학적 접근법으로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상용되는 방식에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민들이 나라의 미래를 진지하게 토론하고 여러 사안들의 복합성을 최선을 다해 이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는 과학적 방법론을, 보다 많은 기술의 개발보다는 기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을 흥미롭지 않거나 이해하기 쉽지 않은 주제로 이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주장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복잡한 텍스트를 읽거나 심도 있게 토론할 인내력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습관은 바뀌지 않는다거나 우리들이 주요 이슈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단정 짓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만약 우리가 합리적인 사고의 결여가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합리적인 사고를 장려하는 것은 새로운 스마트폰 출시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에겐 지하철에서 신문판매대가 사라지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정책이나 경제에 대한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비디오 게임을 한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다.

이러한 위험한 추세를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 또 이는 가능하다. 우리는 의무적으로 복잡한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게 하는 교육 관련 법을 제정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주의 지속 시간’을 연장할 수 있으며 그들이 현 사안들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우리는 특히 젊은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사회적 교양을 복원하고 과학적 방법을 우리 정책결정 과정의 중심에 놓기 위해서다.

현재 신문들은 유세 중인 정치인들 사진이나 여론조사 결과로 가득하다. 이런 방식의 보도는 뉴스가 아니다. 대중이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들이나 법안들을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독자들이 그런 쪽에 관심이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좋은 정치를 바란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주의 지속 시간을 늘리고 그들이 정책의 세부사항에 관심을 갖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고, 현안에 대한 여러 해석을 두고 토론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미지가 아니라 이슈에 집중하는 해결책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겉보기에만 영웅적이고 실제로는 비겁한 결정을 하는 사람들을 지도자로 삼게 될 것이며 기술의 미래는 황무지가 될 것이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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