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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기춘의 '아~옛날이여'…"'80년 국보위 8000명 숙정도 합법' 판결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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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기춘(78ㆍ수감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근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에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이하 국보위) 사례를 참고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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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숙정' 이후 세태를 다룬 본지 1980년 12월26일자 1면 보도 자료=중앙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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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서에는 “1980년 국보위가 공무원 숙정 계획의 일환으로 일괄사표를 받은 후 선별 수리한 면직 처분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참고해 달라”는 주장이 포함됐다.

2014년 10월 최규학 당시 기획조정실장 등 1급 공무원 6명에게서 일괄 사표를 받고 이 중 3명의 사표를 수리할 것을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지시한 혐의에 대한 반박이었다.

국보위는 1979년 12월12일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운 초헌법적 임시 통치기구다. 국보위는 ‘사회정화계획’의 일환으로 1980년 7월까지 8667명의 공직자를 ‘숙정(肅正·부정을 엄격히 단속하여 바로잡음)’했다. 이 중 ‘7ㆍ9 숙정조치’에 의해 자리를 뺏긴 2급 이상 고위 공직자는 232명이었다. 국보위 시절은 김 전 비서실장이 대검찰청 특수1과장으로 검사로서 승승장구하던 때다.

1990년대 들어 당시 억울하게 쫓겨난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 직원들은 면직무효 확인 소송이나 해고무효 확인 소송 등으로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1999년 대법원은 이들이 제기한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김 전 실장 측이 제시한 ‘사건번호 99두5481’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1980년의 공직자 숙정계획의 입안과 실행이 전두환 등이 한 내란행위를 구성하는 폭동의 일환에 해당한다는 점만으로 원고의 사직원 제출행위가 강압에 의하여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김 전 실장 측은 의견서에서 이 판결 등을 근거로 “1급 공무원의 사직원 제출은 장관 교체기에 장관의 의사에 따라서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며 “1급 공무원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사직원을 냈더라도 사직원을 권유하는 행위를 직권남용에 의한 권리행사 방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 측은 2003년 3월~2014년 12월 각 부처에서 벌어진 1급 공무원 일괄 사표 제출 사례 11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의견서를 전달받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즉각 반박 서면을 제출했고 그 골자를 지난 19일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의 재판과정에서 주장했다.

특검팀은 “99년 대법원 판결은 의원 면직 형식으로 사라진 공무원 신분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되돌릴 수는 없다는 판단에 불과해 (문체부 인사파동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특검팀은 “당시 공무원 숙정은 신분보장을 포함한 직업공무원제도를 침해하는 위헌ㆍ위법한 조치”라는 학계의 의견도 소개했다.

2000년대에 발생한 1급 공무원 일괄 사표 제출 사례에 대해선 “11건 중 5건이 박근혜 정부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이 중 4건은 김기춘이 비서질장 취임 후 1년 내에 벌어진 일 들”이라며 “그 자체가 인사권을 수단으로 한 직권남용이 실제 일어났다는 증거”라고 되받았다.

임장혁ㆍ유길용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인터뷰]증언대 선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국보위 시절 이야기에 황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측이 국보위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것 보고 황당했다. 그게 지금 할 소리냐. 때가 어느 때인데 그때랑 비교하나. 그런다고 그게 정당화 되나."

지난 19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송수근 문체부 1차관(장관 대행)을 법정 밖에서 따로 만났다. 송 차관은 "기조실장 부임 직후 동료들이 줄줄이 찍혀 나갈 때 ‘진짜 실행되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내가 30년 공직에 있으면서 이런 적은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송 차관이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부임한 2014년 10월은 유진룡 전 장관이 경질되고 1급 공무원 6명이 일괄 사표를 내는 등 부처가 뒤숭숭했을 때다. 부임 직후 송 차관은 블랙리스트를 관리하는 ‘건전콘텐츠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어 김 전 실장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준비해야 했다. 송 차관은 "'하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조직이 가루가 될 지경이었다"며 "김 전 실장이 그만 둔 뒤로는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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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김기춘·조윤선 재판이 열린 4월 19일 서울중앙지법에 증인으로 출석해 "블랙리스트 관리 TF는 김 전 실장의 화를 가라 앉히려고 '시늉'만 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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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선 전 장관의 모습 보니 어땠나. 한때 같이 일했는데.

"수척해진 모습에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조 전 장관이 부임했을 때 조직 분위기가 말이 아니어서 수습하려고 나름 노력 많이 하긴 했다. ‘힘 있는 장관’이 와서 이 정도 해결할 능력은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없었다.".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집행을 몰랐다는 입장인데.

"일관되게 몰랐다고 하니 나도 참 헷갈린다. 수석도 하고 그랬으니 알고 있었을 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요즘 문체부 분위기는.

"특검 수사와 감사원 감사가 끝나고 조금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재판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뒤숭숭해졌다. 80명이 넘는 직원들이 증인으로 불려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여전히 분위기는 침체돼 있다."

- 블랙리스트 문제 이후 달라진 게 있나.

"(그동안) 빼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넣으라는 청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 이후 정치권 등에서 줄을 잇던 이런 요구가 사라졌다. 이번 사태 덕분에 나쁜 관행이 없어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 정치권 중심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고 감사원 감사 결과도 나오기 전이어서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국회의 문제 지적과 특검 수사에 이어 감사원 감사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난까지 맞을 수 있는 건 다 맞았다. 이 상태에서 또 조사해서 관련자 징계하고 그러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부처를 쪼개서 여기 붙이고 저기 붙이고 그런다고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본질적 문제는 공무원들이 정치권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공무원에게는 복종의 의무도 있다. 선거로 당선된 권력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 장관 직무를 대행 중이다. 마음이 무거울 텐데.

"차기 정부 눈치를 봐야할 부처 아닌가. 손봐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쓰라린 과거가 있지만 새 정부에선 잘할 거고,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고민하고 있다. 국민과 차기 정부를 설득할 제대로 된 비전을 새로 가다듬고 있다."

- 노태강 국장은 만나봤나.

"이번 사태 터지고서 한 번 만났다. 그 친구는 도인이 다 됐더라. 어째서 그렇게 달라졌냐고 했더니 '책 많이 읽고 생각이 많아져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 아까운 사람이다."

송 차관은 문체부를 가운데 두고 벌어진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말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종의 백서인 셈이다. 그는 "후임자들과 다음 정부들도 교훈으로 삼을 근거를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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