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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밥상물가 서민 잡네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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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기자] 밥상물가가 무섭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세계생활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물가는 전세계 133개 도시 중 6번째로 비쌌다.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9위)보다도 순위가 높다. 특히 식품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차라리 가정간편식(HMR)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저렴하다. HMR, 집밥보다 얼마나 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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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전자레인지 조리가 끝났다. 최민섭(28)씨는 익숙하게 포장을 뜯어 달걀북엇국을 국그릇에 옮겨 담았다. 냉장고에 넣어뒀던 참나물무침과 연근조림도 꺼내 반찬그릇에 담았다. 햇반까지 하나 꺼내 놓으니 그럴싸한 한끼 식사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최씨는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회사 구내식당이 따로 없어 점심은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었다. 오늘은 반찬이 푸짐한 '한상가득도시락(GS25ㆍ3800원)'을 골랐다. 떡갈비ㆍ제육볶음ㆍ콩나물무침 등 반찬이 8가지나 돼 최씨가 애용하는 도시락이다. 인기가 많아 늦으면 그마저도 사기 힘들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국민엄마 이름이 붙은 도시락이어서 그럴까. 도시락을 먹다 처량한 생각이 들어 목이 메었다. 서비스로 준 생수 한 모금 들이켜며 점심식사를 마쳤다.

퇴근 후엔 술 한잔 하자는 동기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곧장 귀가했다. 간단하게 씻고 최씨는 저녁준비를 했다. 메뉴는 이미 냉장고에 준비돼 있다. 이번에도 띵동…. 전자레인지에 몇분만 돌리면 끝이다. 구수한 바지락살 얼갈이 된장국에 대파불고기ㆍ오이양파무침ㆍ간장고추ㆍ멸치지짐까지…. 우렁각시라도 몰래 다녀간 듯한 상차림이다. 동기들과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지만 TV를 친구 삼아 저녁식사를 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날 최씨는 가스불 한번 켜지 않고 삼시세끼를 해결했다. 모두 가정간편식(HMR ㆍHome Meal Replacement)이었다.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 아침과 저녁은 동원그룹의 HMR 전문몰 '더반찬'에서 주문한 '7데이세트'였다. 7가지를 고를 수 있어 자주 이용한다. 최씨의 오늘 하루 식비는 더반찬에서 주문한 '7데이세트' 2만4900원(배송료 포함), 햇반 2개(2860원), 편의점 도시락(3800원)까지 더해 3만1560원이었다.

최씨처럼 HMR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11년 1조1067억원이던 HMR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조3000억원까지 성장했다. 올해는 3조원을 넘어설 거란 전망이다. 1인 가구 증가세가 HMR 시장 성장에 한몫 톡톡히 하고 있지만 치솟는 밥상물가도 한축을 담당한 결과다. 식품물가가 워낙 비싸다보니 간단하게 조리만 하면 되는 HMR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거다.

최씨도 장보는 게 두려워 HMR으로 삼시세끼를 해결하곤 한다. 밥상물가가 자고 나면 오르는데다 마트에서 파는 최소 단위 수량으로만 구매해도 혼자 살다보니 재료가 남아 처치 곤란할 때가 많아서다. 재료가 아깝다고 요리를 많이 해놓으면 그 역시 남아 버리기 일쑤다. 최씨가 편의점 도시락을 시작으로 HMR에 빠져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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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HMR은 실제로 저렴할까. 같은 메뉴를 마트에서 구해 직접 요리를 하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한다는 전제를 깔고 집밥을 위한 재료를 구입했다. 양념은 집에 있다고 가정했다.

먼저 아침 메뉴다. 달걀북엇국에 들어가는 달걀(2990원ㆍ홈플러스 신선란 10개)과 북어(1만4980원ㆍ200g)를 카트에 담았다. 무침과 조림에 사용할 싱싱한 참나물(1990원ㆍ1봉)과 연근(5990원ㆍ700g)도 샀다. 쌀은 양이 많을수록 단위 가격이 저렴하지만 보관이 쉽지 않아 2㎏(6990원ㆍ5분도미)씩 포장된 걸 샀다.

저녁 밥상은 국 하나와 반찬이 3가지다. 바지락살 얼갈이 된장국을 위해 바지락살(3356원ㆍ102g)과 얼갈이배추(1990원ㆍ1단)를 샀다. 대파불고기에 필요한 소불고기(4890원ㆍ200g), 불고기양념(2390원ㆍ청정원 불고기양념 280g), 대파(1690원ㆍ1봉)도 구입했다. 오이(690원ㆍ1개)와 양파(890원ㆍ1개)도 카트에 담았다. 오이양파무침을 만들기 위한 메뉴다. 최씨가 좋아하는 간장고추 멸치지짐은 멸치(7980원ㆍ홈플러스 통영 조림용 멸치 200g), 꽈리고추(2490원ㆍ1봉)만 있으면 된다.

계산대 앞에서 최씨에게 청구된 금액은 5만9306원. 여기에 점심 도시락(3800원)을 더하면 삼시세끼에 필요한 돈은 6만3106원이다. HMR로 해결한 삼시세끼보다 집밥이 2배나 비싸다. 동일한 양은 아니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탓이다. 신선식품물가가 유독 크게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생활물가지수는 103.2로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 하지만 신선식품지수는 106(2015=100기준)을 기록, 102.3을 기록했던 1년 전보다 7.5% 상승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의 영향을 받았던 달걀이 43.1%로 가장 많이 올랐고, 돼지고기와 파는 각각 8%, 13.6% 치솟았다. 어류와 수산 품목도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신선식품 가격이 이렇게 꿈틀대니 밥상물가 오른 건 당연지사다. HMR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 고공행진하는 물가라는 팍팍한 현실이 숨어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서민물가를 잡겠다며 물가관계차관회의 겸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회의를 매주 개최하고 있지만 물가는 여전히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서민들의 지갑은 얇아지고 HMR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 우리의 슬픈 자화상 自畵像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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