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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삶 담긴 건강한 노래로 사람도 사회도 바꾸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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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세월호 추모곡 만든 군산 윤광호 목사

한겨레

세월호 추모곡 지어 3주기 공연하는 싱어송라이터 윤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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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있어야 땅에 오를까/ 얼마나 기울어야 알 수 있을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늘을 볼까/ 물은 차올라 오는데/ 기다리래 기다리래~/ … 얼마나 달려야 쉼을 얻을까/ 얼마나 헤매야 행복 찾을까/ 얼마나 흘러야 평화 얻을까/ 바람은 불어오는데/ 하늘 구름 바람 사람~”

세월호 3주기를 앞두고 평화를 노래하는 윤광호(61·사진) 목사가 직접 작사·작곡한 세월호 추모곡 ‘기다리래’가 주목받고 있다. 윤 목사는 세월호 참사가 나자 이 노래를 바로 만들었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이 엄마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방송은 안 나와요”를 소재로 삼았다. 그는 이 사건을 추모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남은 자들이 할 일을 강조하기 위해 부제(‘세월호 그리고 우리’)도 달았다. 그래야 희생자의 원혼을 제대로 달랜다는 의미다.

단원고 희생 학생의 마지막 문자 메시지
“기다리라는 방송만” 보고 ‘기다리래’ 지어
1주기 때부터 전국 20곳 돌며 거리 콘서트


신학교때 밥 딜런 노래에 ‘음악선교’ 결심
‘진실 규명·양심사회·참된 평화’ 전파
새달 15일 군산에서 3주기 추모공연


그는 2015년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 즈음부터 ‘진실규명, 양심사회, 참된평화’를 위한 길거리 콘서트를 펼쳤다. 참사 직후 바로 진행하지 못한 것은 음원을 만들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북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전국 20여곳을 순회했다. 물론 무료 공연이었다. 순수한 의미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공연 장비를 직접 7인승 승용차에 싣고 다니는 그는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으로 전북 군산에 사는 그는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새달 15일 군산 은파유원지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앞서 새달 9일에는 서울시 구로구 여명교회에서 열리는 세월호 추모 연합예배에서 공연한다.

그는 현실참여 곡을 직접 만들어 부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한-일 평화콘서트에도 참여했던 그는 탈핵 관련 ‘아름다운 고향’, 통일을 노래한 ‘한겨레여’, 군산 송전탑 관련 ‘이 땅은’ 등의 노래를 작곡했다. 정식 음반(시디)으로 3집이 있으나, 4번째부터는 시디를 내지 않고 공유를 위해 유튜브에 곡을 올린다.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동요를 소재로 한 ‘어디만큼 왔나’도 만들었다.

아버지가 목사로 기독교 집안 출신인 그는 생활 속에서 음악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1978년 한신대에 입학한 그는 밥 딜런의 평화를 주제로 한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블로잉 인 더 윈드)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접할 수 없는 노래였다. 노래가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학과 음악의 접목을 고민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과 독일에서 교회 전통음악의 하나인 파이프 오르간을 제대로 알기 위해 오르간 공장에 직접 취직했다. 하지만 회사는 만드는 기술만을 익히는 숙련 기술자를 원했다. 신학과 음악의 접목, 그리고 교회음악을 배우려는 꿈이 좌절했다.

스스로 주변인에 해당하는 ‘디아스포라’(유민) 인생이라고 밝힌 그는 “노래의 힘을 느끼기 때문에 삶에 대한 표현을 나의 방식인 노래로 전하고 싶다. 흔히 목사들이 설교집을 만들어 성경말씀을 전하지만, 나는 내가 만든 노래로 이 사회에 복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과 유리되지 않아야 건강한 노래라는 게 신념이다. 이제 우리 문화양식과 향유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그는 “똑같은 사람이 같은 노래를 불러도, 유명세 여부에 따라 실력 평가를 달리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있다”고 세태를 꼬집었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염을 기르는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목사가 목회활동만 열심히 하면 되지 무슨 노래냐”는 비아냥이다. 그런 선입견 때문에 행사에 초청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 그는 “그런 편견이 불편하고 마음 아프다. 나의 표현 도구인 노래 속에 삶과 신앙관이 드러나면 된다. 그것을 제대로 못하는 노래가 오히려 건강하지 않고 허구에 찬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목사 같지 않은 목사’라는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는 “목사이기 이전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연스럽게 소통하면 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마을축제 때 목사든 주민이든 모두 함께 어우러진다. 사회의 고통받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되,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을 묵묵히 가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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