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앵커브리핑]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

댓글 18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중 한 구절입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을 겪은 여고생은 그해 여름의 초입,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넣습니다.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시민이 모여들었던 광장의 한복판. 그곳 분수대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이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소녀는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수많은 죽음을 딛고 권력자가 되었던 사람. 오랜 시간이 지나 옥살이를 했고, 그 안에서는 억울함에 단식을 했으며, 또한 일부 재산은 추징도 당했다지만,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역사는 퇴행을 거듭했습니다.

지금도 유력 대선주자들의 예방을 받고 있고,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는 주장을 대놓고 해왔던 것이 그걸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지요.

그러는 사이 80년의 5월은 조롱을 당해야 했고, 왜곡 당해야 했고, 동시에 위정자들로부터는 잊혀짐을 강요당해왔습니다.

급기야…"우리 내외도 5·18 사태의 억울한 희생자"

'내란목적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던 그들은 그날을 여전히 '사태'라 칭하며 자신들은 '학살자'가 아닌 '희생자'라 주장했습니다.

누군가들에게 피해자에 대한 조롱은 마치 습관이면서 불치의 병이 되었는지, 세월호에도 역시 지난 3년간 온갖 조롱이 쏟아졌습니다.

'아이는 가슴에 묻는 것'이라는 둥, '교통사고'라는 둥, '세금도둑'이라는 둥… 늘 말씀드리는 피자 폭식은 이들의 조롱이 얼마나 반인륜적인 것인가를 온몸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배가 마치 거짓말처럼 바다 위로 올라온 이 순간에도 그들은 인양의 비용을 거론하고, 그것은 수학여행길 교통사고였으며, 책임자들은 처벌받았으니 잊을 건 잊으라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전 재산 29만 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것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날의 분수대에서는 일상처럼 물이 솟아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아홉 명의 사람들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오늘(29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JTBC, JTBC Content Hub Co., Ltd.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by JTBC, JTBC Content Hub Co., Ltd.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