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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72조원이냐 24조원이냐… 英-EU ‘이혼합의금’ 최대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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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협상 절차 시작

EU “72조원 동의해야 FTA” 강경

英 거주 EU시민 권리 논쟁도 첨예

세부지침 마련 후 5월말 첫 협상

타결되든 결렬되든 후유증 예고

메이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순간,

영국 국민 모두 함께 해야” 호소
한국일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9일 브렉시트 탈퇴 협상 개시에 관한 의회 연설을 하기 위해 런던 다우닝가 총리 관저를 나서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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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유럽연합(EU)과 ‘이혼’을 위한 2년의 여정을 시작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EU 측에 통보하는 서한에 서명하면서 양측 모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메이가 모든 영국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려는 협상에 방아쇠를 당겼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44년 인연을 접고 완전 결별을 선언한 영국과 EU 사이에는 수많은 난제가 얽혀 있어 협상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메이 총리는 29일 오후 1시20분 팀 배로 EU 주재 영국대사를 통해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6쪽짜리 브렉시트 서한을 전달했다. 지난해 6월 국민투표에서 영국민이 EU와의 결별 선택한지 9개월 만에 탈퇴 제반 사항을 규정한 이혼합의서, ‘리스본조약 50조’가 공식 발동된 것이다.

메이 총리는 서한 전달 직후 의회 연설에서 국민을 향해 ‘통합’을 호소했다. 그는 “서한은 영국이 EU를 떠난 후 가까운 친구로서 누리고자 하는 특별한 파트너십에 관한 내용”이라며 “이런 목표들이 영국은 물론 유럽과 세계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 탈퇴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순간으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영국민)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을 뺀 EU 27개 회원국 정상들도 서한을 접수한 뒤 공동성명을 내고 “한 몸으로 행동해 EU의 이익을 지키고 영국의 이탈로 야기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겠다”고 밝혔다. 최대한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되, EU 시민들의 손해는 절대 감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언한 셈이다. 투스크 의장은 “벌써 당신들(영국)이 그립다. 고맙고 잘 가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은 “간단하지만 단호한 내용이 성명에 담겼다”고 전했다.

첫 협상은 5월 말로 예상된다. 다음달 29일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가이드라인’을 승인하면 EU 집행위원회가 4주간 세부 지침을 마련한 뒤 미셸 바르니에 EU 집행위원회 협상 대표에게 공식 권한을 부여한다. 양측은 일단 내년 10월까지 협상을 끝내겠다는 구상이다. 독일 총선 등 각국 정치일정과 영국 및 유럽의회, EU 개별 회원국 동의 절차 등을 감안한 기간이다.

그러나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첨예한 쟁점이 도처에 깔려 있어 영국과 EU가 계획대로 협상 시간표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영국의 EU 탈퇴 비용, 이른바 이혼합의금은 최대 난제이다. EU는 영국이 당초 약속한 분담금 등에 기반해 “떠나려면 600억유로(72조1,230억원)를 내라”고 벼르고 있다. 반면 메이 총리는 “나쁜 합의(bad deal)보다 무합의(no deal)가 낫다”며 EU 요구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다. 영국이 생각하는 합의금은 많아야 200억유로(24조410억원) 정도다. 또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택한 영국 정부는 협상과 동시에 개별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진행하길 원하지만, EU 측은 “탈퇴 비용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무역협상도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타협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메이 총리는 서한에서도 “경제협력 관련 협정 없이 EU를 떠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서 교역해야 한다”며 탈퇴비-FTA 병행 협상을 거듭 요구했다.

이런 장기과제 못지 않게 협상이 시작되면 당장 영국에 거주하는 EU 회원국 시민의 권리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영국은 협상 기간 이주민 급증을 이유로 EU 시민의 영국 이동에 제한을 둘 예정이나 EU 측은 이를 타협 불가능한 ‘레드라인’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불어 독립 의지를 재천명한 스코틀랜드 정부를 달래고, 브렉시트 시행에 따른 아일랜드ㆍ북아일랜드와 국경을 설정하는 문제 등 집안 단속도 메이 총리에게 부담을 안겨 줄 것으로 영국 언론들은 보고 있다.

브렉시트 협상의 불안한 앞날을 반영하듯, 이날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한 때 0.6%까지 떨어졌다. BBC는 “타결되든, 결렬되든 영국이 2019년 3월 29일 EU를 떠나는 것은 분명하다”며 협상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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