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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인사이드칼럼] 中 정교한 사드보복에 韓, 현명하게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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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드 보복의 핵심 조치는 중국 정부가 여행사들에 취한 한국 여행상품 판매 금지다. 항공 여행에 이어 크루즈 여행마저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 타격이 막대하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라는 작은 전투에 매몰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이 조치가 WTO 협정에 위반하는지부터 정확히 분석해야 올바른 대응 방향이 도출된다. WTO 협정에서 중국이 여행과 관련해 개방한 서비스 업종은 '여행알선대행업'과 '호텔·레스토랑업'이다. 중국은 이 두 부문에서 중국인의 해외 소비를 허용할 것을 약속했지만, 중국인의 해외 여행을 외국 회사가 알선할 수는 없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어차피 한국을 포함한 외국 여행사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 여행을 알선할 수는 없다. 중국의 현행 조치의 본질은 이러한 제한을 중국 여행사들에 확대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한국 여행사들에 새로운 규제가 도입된 것이 아니다. 중국 내에서 영업하는 외국 여행사들도 어차피 중국인 해외 여행을 알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 여행 알선 금지 조치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므로 이들 간의 차별 문제(최혜국 대우 위반)도 발생하지 않는다. 중국인이 중국 여행사를 통해 한국 여행사를 접촉하는 것은 제한당하나, 이것은 해외 소비에 대한 제한이 아니라 자국 여행사의 해외대행 계약에 대한 규제에 불과하다. 이 점과 관련해 중국인들이 직접 한국에 있는 한국 여행사를 접촉하는 것은 규제되지 않아 해외소비 형태가 허용되어 있는 점을 참고할 수 있다.

한국을 여행하는 중국인 수가 줄어들어 한국 호텔·레스토랑업에 대해서만 피해를 주게 되니 한국의 호텔·레스토랑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임을 주장할 여지는 있는가? 중국이 취한 조치는 여행의 '알선(agency)' 행위에 대한 제한이지 한국 호텔과 레스토랑 이용을 규제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WTO 서비스분류표에서 '여행알선업(CPC7471)'과 '호텔·레스토랑업(CPC6411)'을 별도로 분류하고 있지 않은가. 여행알선업을 규제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여행이 제한당하므로 호텔·레스토랑업의 매출이 감소하게 되기에, 후자에 대한 규제와 마찬가지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업종 간의 영향관계를 보고 WTO 서비스 양허를 해석하려 든다면 사람의 해외 이동에 대한 모든 종류의 규제를 호텔·레스토랑 서비스에 대한 규제로 해석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은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어 국제규범 정립을 통해 경제통상 관계를 안정화시키려 하고 있다. 더군다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중국 통상 보복을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라 국제사회에서 국제규범 준수를 강조해야 할 처지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대해 국제법에 위반하는 무역 보복을 스스로 가하는 것은 중국 지도부가 결코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드 보복은 결국 국제규범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행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이미 시행한 보복들도 모두 소비자 안전이나 건강 관련 규제(롯데마트 소방법 규제·화장품 허가요건 심사 강화 등), WTO 및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양허하지 않은 분야(한류 규제·전세기 운항 금지)나 유보한 부문(한국 관광상품 판매 금지)에서의 규제로,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교묘하게 고안된 것들이다.

이러한 중국에 대해 우리가 국제규범 준수를 외쳐대는 것은 초점이 안 맞는 대응이고, 한류·전세기·화장품은 포기하겠다는 것이며, 앞으로도 국제규범에 합치하는 보복은 감수하겠다는 식으로까지 해석될 여지도 있다. 현행 국제규범 준수 여부를 떠나 사드 보복과 같이 안보 이슈를 통상 보복으로 해결하려는 치졸한 시도들이 세계 경제와 서민 생활에 미치는 해악에 초점을 맞추어야 마땅하다. 국제공동체가 이를 성토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길만이 사드 보복에 대해 정면 대응하는 길인 것이다. 미국 의회에선 사드 보복 성토 결의안이 제출되었는데, 우리 정부는 국제규범 준수 레토릭(rhetoric)만 반복하고 있다.

[최원목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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