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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오르면 '우는 소리' 내려가면 '시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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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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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료 가격 인상 → 아우성 → 가격 인상'. 소비자 제품을 만드는 업계는 이런 식으로 가격을 올린다. 명분은 원재료 가격 인상에서 찾는다. 문제는 한번 올라간 제품가격은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재료 가격이 떨어져도 그렇다. 가격을 올리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BBQ의 가격 추이를 통해 '제품가격의 비탄력성'을 살펴봤다.


국내 치킨프랜차이즈 업계 1위인 제너시스BBQ가 최근 홍역을 앓았다. 가격 인상 플랜을 밝혔다가 정부의 으름장에 곧바로 철회했기 때문이다.

BBQ는 20일부터 대표메뉴 2000원, 나머지 메뉴는 1000~1500원 올릴 계획이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 후폭풍으로 닭고기 원가가 오른 데다 카드수수료, 배달앱 수수료 등의 부담이 커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BBQ의 입장이었다. 정부 생각은 달랐다. 치킨업계의 가격 인상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정부는 "유통질서 문란행위에 대해 국세청 세무조사, 공정위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그렇다면 치킨업계가 가격 인상을 꾀할 때마다 뭇매를 맞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가격 인상의 명분이 약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에서 처음 AI가 발생한 2003년부터의 산지가격과 치킨업계 대표브랜드인 BBQ의 가격 변화 추이를 살펴본 이유다.

AI가 발생해 닭고기 산지가격이 오르고, 그로 인해 원재료가격 상승에 부담을 느낀 치킨업계가 가격을 올린다면 업계의 주장에 명분이 생긴다. 그렇다면 과연 업계의 주장대로 이 상관관계는 성립할까? 혹시 그걸 핑계로 치킨업계가 자기들 배만 불리고 있는 건 아닐까.

첫째 질문을 풀어보자. AI 여파로 원재료 가격은 상승했을까.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육계 산지가격(한국육계협회)을 살펴본 결과, 2003년 3월 23일 1040원(1㎏당ㆍ크기 '중' 기준)이던 산지가격은 올 3월 23일 2090원으로 올랐다. 14년 동안 1050원이 오른 셈이다. 이 결과만 보면 업계가 내세우는 '원재료 가격 상승'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8년 4월 1460원이던 산지가격은 2009년 1월 2500원선을 넘었다. AI 여파 와 계절 영향으로 수급량이 줄어든 탓이었다. 그러자 BBQ 측은 2009년 2월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제품가격을 15% 인상했다. 1만4000원이던 프라이드치킨 가격이 1만6000원으로 올랐다. 1위 업체가 가격을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굽네치킨, 네네치킨 등 후발주자도 주요제품 가격을 1000원씩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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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다음이다. 오르락내리락하던 산지가격은 2010년 9월 1580원으로 떨어졌다. 다시 약 1000원이 떨어졌지만 치킨업체들은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사실 닭고기 산지가격이 치킨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치킨가격에서 닭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수익 악화, 가격 인상으로 해소

더구나 치킨 업체들은 닭고기 생산업체와 공급가격 상한선과 하한선을 미리 정해 놨다. 계약기간 단위도 6개월 또는 1년이다. AI 발생 등으로 산지가격이 상승해 치킨가격을 올릴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업계 내 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해결하려는 한다"는 정부의 지적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가격을 인상하면 치킨업체의 수익성만 좋아진다'는 둘째 질문도 쉽게 풀린다. 다시 BBQ 사례를 들어보자. 제너시스BBQ가 마지막으로 가격을 인상한 2009년 공교롭게도 이 회사의 실적도 개선됐다. 2008년 -143억7353만2820원으로 떨어졌던 영업이익이 2009년 17억6166만8799으로 흑자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가격인상이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방증이다.

일단 정부는 "불공정 거래 행위"라면서 BBQ의 가격 인상을 막았다.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물가안정'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정부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가격을 올리는 데 실패한 치킨업계가 어떤 이유를 들이댈지 모르기 때문이다. 치킨업계의 치킨게임은 현재진행형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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