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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트럼프의 철학은 베리 심플, 북핵 해결 활로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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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얘기도 나오지만 트럼프 지지세 강고

무력 해결 걱정되지만, 1대 1 협상 원칙이 활로 될 수도

출발 늦은 한미 외교, 이제라도 초당적 접근해야

일본,한미관계를 미일관계 하부구조로 만들려하는 듯

미국내 한인 정치 역량 강화가 한미 외교 큰 자산

지난해 미 대선에서 한국과 미국의 언론들은 내내 헛다리를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를 ‘승산 없는 돌발 변수’ 정도로 치부했다. 그해 여름 트럼프의 저력을 제대로 짚어내 주목 받은 사람이 있다. ‘트럼프가 2008년의 오바마처럼, 침묵했던 다수를 끌어내고 있다’(중앙선데이 2016년 5월 22일자)며. 92년부터 미국 내 한인들의 권익 신장과, 정치적 힘을 결집하는 일을 해 온 김동석(59) 시민참여센터(KACE) 상임이사 얘기다. 미 의회 네트워크를 통해 2007년 하원 위안부 인권 결의안을 이끌어 내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트럼프 취임 두 달째인 22일 서울에서 만난 김 이사는 “지금도 주류 언론의 보도와 달리 트럼프의 지지세는 강고하다”며 “트럼프 시대, 한국이 초당적 목소리로 대미 관계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김동석 미국 시민참여센터 이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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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러시아 내통 의혹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얘기도 나오는데.



A : “주류 언론이나 상식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이 보기엔 ‘탄핵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전체 여론의 힘이 트럼프 탄핵 쪽으로 결집될 것 같진 않다. 그는 자신의 공고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주류 미디어와 계속 전쟁을 하고 있다. 자기 기반만 공고히 하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 없다고 판단한다. 미 정계에서 존중받는 부통령 마이크 펜스를 내세워 공화당이 트럼프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트는 전략도 성공시켰다. 트럼프가 존경받고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낮지만 탄핵된 대통령은 안될 거다. 다만, 이런 식이면 2년 후 중간 선거 때 참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렇더라도 지역 기반인 하원은 공화당이 여전히 다수를 유지할 것 같다.”




Q : 트럼프의 지지세가 유지되는 배경은.



A : “선거 때 트럼프는 도회지가 아닌 시골로 갔다. 도심에서 차로 서너시간 걸리는 곳을 공략했다. 유세 기간 5개 전당대회를 다 다녀봤는데 미국 시골에 그렇게 많은 백인들이 사는지 몰랐다. 점잖은, 허름한 차림의 백인들이 유세장을 조용히 꽉 채웠다. 트럼프는 이 백인 중하층 600만 명을 정치의 장으로 꺼냈다. 그래서 공화당이 트럼프에게 별로 할 말이 없는 거다. 서울에서는 외교안보와 무역정책을 중심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보겠지만, 실상 그의 핵심 정책은 인종주의이다. 그 중심에 백악관 실세인 스티븐 배넌 선임 고문이 있다. 많은 중하층 백인들이 이민자들로부터 상대적 박탈감을 갖고 있어 지지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 트럼프 전선에 선 이민자 권리 단체나 여성단체 등은 백악관에서 배넌을 내보내는 것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아이오와주 전당대회에 참가했을 때 미디어 종사자를 빼고는 내가 유일한 아시안이었다. 그때 행사장에서 바깥으로 나를 내보낸 게 배넌이다. 배넌의 그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잊지 못하겠다.(김 이사는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대선 캠프 소수계 전략팀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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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미국 시민참여센터 이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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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북한 도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이 강력해 보인다.



A : “전쟁도 불사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하지만 과거 행정부들에 비해 북한 문제가 해결될 기회가 더 열려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역대 미 대통령들은 일본, 중국, 러시아, 동북아 다자 역학 관계를 함께 고려했지만 트럼프는 이런 걸 싫어한다. 그의 철학은 한마디로 ‘베리 심플(very simple)’이다. 긴장 국면도 있겠지만, 1대 1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나서면 의외로 활로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Q : 한국 정치 상황으로 대미 외교에 차질이 많은데.



A : “안타깝다. 워싱턴에서 일본의 움직임을 보면, 일본이 한미관계를 미일관계의 하부구조로 넣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베 일본 총리가 트럼프를 여러 번 만나면서 그런 구도로 가는 것 같다. 북한의 위협을 얘기할 때 트럼프는 일본편에 확실히 선다는 얘기를 했지, 한국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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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미국 시민참여센터 이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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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미 여러 나라들이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자 외교의 틀을 잡고 있다. 4월엔 미·중 정상회담도 열린다.



A : “많이 늦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새 정부 출범 후 대북 문제나 한·미간 이슈 등을 미국과 얘기할 때 여·야가 수렴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미 의회든 행정부든 한국 정치권의 일치된 목소리를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미국 외교 정책에서 예산 및 인사권을 가진 의회의 중요성은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의원 외교는 중요하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국 정치인들을 만난 미 의원들이 ‘각자 얘기가 달라 너무 혼란스럽다’고 하는 걸 많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의원 외교를 한다며 여야 의원들이 함께 와선 자기네 당에 관심있는 이슈만 얘기한다. 여당 의원이 위원장이면 야당 의원들은 말도 않고 있다가 나중에 따로 와서 조금 다른게 아니라 완전히 정반대의 입장을 말하는 식이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들이 국내 이슈에선 갈라져도 외교안보 정책은 초당적이지 않나.”




Q : 김 이사는 미국내 한인 시민단체의 정치력 확장이, 대미 외교력 강화의 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 : “미국내 유대인들이 중심이 된 AIPAC(미·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을 보자. 미국이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건 미국내 600만이 넘는 유대인의 결집력,그들이 주류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 때문이다. 한인도 200만 명이나 된다. 그런데 한국은 오히려 이들을 여의도 선거(재외국민 투표권 허용)로 끌어 들여 버렸다. 한인들이 대선을 얘기할 때 ‘클린턴이냐 트럼프냐’가 아니라 ‘문재인이냐 안희정이냐 누구냐’ 이런 얘기를 한다. 이게 현실이다. ‘그래도 미국내 한인들이 고국에서 대접 받는 건 투표권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대접은 노 생큐다. 미국에 온 이상 미국 사회가 인정하는 건실한 시민이 돼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이익에 대해 얘기를 해도 힘이 실린다.”




Q : AIPAC(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내 유일한 동아시아계 회원이라고 들었다.



A : “AIPAC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일반 시민에게도 문호는 열려 있다. 올해 총회는 25일(현지시간) 부터 나흘간 워싱턴에서 유대인 지도자 1만 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26일 저녁엔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 두나라 각료들이 참가한다. 여기서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정책 그림을 읽어낼 수 있다.이스라엘은 미국에게 ‘이스라엘을 지지해달라’고 하지 않고, ‘당신네 시민들의 형제들을 지켜달라’는 논리로 접근한다.그 배경엔 AIPAC의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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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미국 시민참여센터 이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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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는 한인들도 AIPAC을 벤치마킹한 단체를 2014년 출범시켰다고 했다. KACE와 워싱턴한인연합회가 공동 주관하는 ‘미주 한인 풀뿌리활동 컨퍼런스’(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다. 오는 7월 한인 800여명이 모여 네번째 행사를 연다. “행사에 참가하는 미 연방 의원들의 숫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Q : 지금 미국 사회에서 소수계 이민자들의 위치가 흔들리는 건 아닌가.



A : "그런 측면도 있지만 이미 구축한 한인들의 역량이 있다. 나는 오히려 미국 정치의 판이 흔들리는 지금이 한인 같은 소수계가 정치적 힘을 확대시킬 기회라고 본다. 한국내 정치공학의 수단으로 미주 한인들을 보지 말고, 대통령 임기와 관계 없이 장기 과제로 한인들의 정치 역량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지역구 의원들을 갖고 있는 미국내 한인들은 현지 정치인에게 효율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경우 미디어, 싱크탱크, 기업의 활동, 미국내 일본인 사회를 통해 자국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다.”




Q : 위안부 문제도 미국의 외교에서 고려사항일 텐데.



A : “위안부는 인류 보편의 인권 이슈로, 국제 사회나 대미 관계에서 일본의 아킬레스건이다.10년 전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할 때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량학살)’ ‘흑인 인권’ 문제에 얹어 어필한 이유다. 그런데 최근 한·일 진실게임처럼 돼 버렸다. 한·일간 분쟁 외교이슈가 되면 미국 사람들은 외면한다. 미 국무부 직원이 한번은 한·일 분쟁으로 비춰지는 사례들을 죽 보여주더라. LA의 한 기림비엔 한국 정치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일본이 쳐놓은 함정에 빠지는 거다. 전략적으로 했으면 좋겠다.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조명 운동을 1947년부터 했지만 70년대 중반 미국민의 인권 이슈로 강고하게 다져질 때까지조용히 했다. 과거사 사죄와 관련해 독일과 일본 정부를 비교하지 말고, 피해자인 우리와 유대인을 비교해 봤으면 좋겠다. 독일이 그런 자세를 취할 때 까지 고도의 전략적 고민 아래 유대인들이 들인 시간과 정성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김수정 국제선임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김수정 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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