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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일사일언] 강화도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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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고군일·2017 조선일보신춘문예 희곡당선자


우리 가족이 봄·가을마다 강화도를 다닌 지도 어느덧 20여년이다. 처음 강화도를 가게 된 건 "수입 농산물로부터 건강을 챙기자"는 여론과 '신토불이' 구호 때문이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국산 곡물뿐 아니라 강화도의 흙과 물과 역사와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화도는 섬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연륙교를 건너왔건만 산과 들과 고개로 이어지는 길을 지날 때면 내륙 깊숙이 들어온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강원도의 어느 산중인가 싶으면 넓은 평야가 나타나고, 백두대간의 두문동 고개인가 하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여준다. 눈 돌리는 곳마다 문화재고, 발길 닿는 데마다 역사의 현장이다. 다니면 다닐수록 없는 게 없는, 섬 같지 않은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테마를 정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고려 궁터와 성문, 절의 창건 설화와 산성, 해안 도로와 돈대의 전투사(戰鬪史), 향교와 왕들의 귀양지 등을 찾아봤다. 산비탈 붉은 흙에서는 진한 인삼 향이 나고, 썰물 진 먼바다 갯벌은 바로 천연 머드팩이고, 용두돈대 해협의 휘돌아 나가는 물살은 억울하게 죽어 떠도는 손돌의 혼 때문이라는 전설을 안 것도 상당한 발품을 판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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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시화 바람이 불면서 점차 강화도는 그 풍경을 잃고 있다. 매음리 염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가을이면 붉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리던 초가집과 거대한 물레방아가 돌던 식당도 새 도로가 나면서 없어졌다. 농부카페를 지나는 흙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된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온전한 소금 창고 하나, 고목이 된 가로수 몇 그루 정도는 남겨둘 수 있지 않았을까. 두 아들이 커가면서 함께 새겨진 추억을 꺼내보지 못할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도 천연기념물인 400년 된 탱자나무를 아직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다. 언젠가 올라가려다 떨어진 적 있는 부근리 고인돌도 오래도록 남을 것이기에 다행이다.

[고군일·2017 조선일보신춘문예 희곡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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