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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허문명의 프리킥]안보의 새 ‘판’을 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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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허문명 논설위원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행보는 이전 장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국무장관이 해외 순방에 출입기자들을 전용기에 태우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미 국민들조차 생소한 인터넷 언론사 기자 1명만 태우고 인터뷰를 녹취록 형태로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기자단 수행은 기동력도 떨어지고 돈도 든다”고 말하는 그는 아직도 장관이라기보다는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느낌이다. “일본은 동맹(ally), 한국은 파트너(parter)” “한국이 만찬에 초대하지 않았다”는 말도 상대국을 배려하는 외교관 모습은 아니었다.

美, 개성공단 재개 우려

미국 내 대북정책에 관여한 미국 지인들에게 틸러슨 장관의 행보에 나타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에 관해 들어보았다. 우선 미국에선 동맹이나 파트너가 거의 같은 개념이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차별화한 것은 협상 DNA를 가진 사람으로서 일본이 한국보다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다는 거다. 주한미군은 대북 전력인 데 비해, 주일미군과 요코스카를 거점으로 한 미 7함대가 미국의 동북아 핵심 군사력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의 말은 수긍이 간다. 하지만 한국이 지금 미국에 한가하게 “예스, 노”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경고처럼 들려 정신이 번쩍 든다.

보통 국무장관 동북아 순방 때엔 부차관보급이 수행한 뒤 따로 남아 동맹국들에 전후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이번 조지프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은 그런 관행과는 약간 다른 경우다. 중국 우다웨이(武大偉) 6자회담 수석대표와 별도 회담 후 방한해 대선 주자들을 연쇄 접촉한 것은 한국의 차기 정권에 대한 탐색이 진하게 담긴 행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개성공단 재개라는 말도 나왔다. 북에 원유 차단 카드까지 꺼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 북한에 핵개발 자금을 퍼 준다면 제재 명분이 사라진다는 거였다. 틸러슨의 ‘한일 핵무장 허용 가능성’ 발언은 가장 관심이 가는 발언이었다. 말 그대로 ‘모든 선택 가능한 옵션 중의 하나’로 전술핵 재배치와 함께 미 정부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미국이 먼저 한국의 핵무장을 거론하는 역사적 최초 상황이니 한국으로선 절호의 기회다. 미국의 가장 큰 걱정은 핵 통제권이라고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처럼 핵 공유와 사용통제권을 한미연합사에 두어 한국의 독자 행동 우려를 불식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문제는 체제 자체를 미국이 만든 것이어서 미국이 한일 핵무장을 고려할 때는 복안이 서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이 지레 겁먹고 먼저 NPT 붕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韓, 미국 설득할 수 있나

한 관계자 말이다. “의지만 갖고는 안 된다. 왜 한국이 핵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이 중요하다. 북핵과 중국 팽창을 저지하는 데 어떤 효과가 있으며 이것이 미국의 국익과도 어떻게 부합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미국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강력한 대북정책의 얼개를 짜는 향후 몇 개월이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시기다. 전직 대통령 수사도, 세월호 인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투철한 안보관을 가진 리더십이 요구된다. 대통령도 잘 뽑고 하반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뭔가 한미 안보정책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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