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더 우울한 4050 조기 퇴직자… 창업 실패율 74%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회사원 윤모(53)씨는 지난 2013년 퇴사했다. 15년 다니던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부장급이라 2억7000만원의 목돈을 받았지만, 4년이 흐른 지금 그는 "답답하다"고 말했다. 퇴직 당시 9억원쯤 되던 순자산(총자산―부채)은 5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재취업에 실패하고, 주식 투자 등으로 돈을 날렸다. 외동딸이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학비와 결혼 자금 등을 생각하면 우울하다. "나올 때는 인생 2모작 자신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한숨 쉬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샐러리맨 가운데 정년퇴직은 10명에 1명 정도라는 게 정부 통계다. 윤씨 같은 조기 퇴직자(조퇴자)들이 정년퇴직자(정퇴자)보다 더 많다는 얘기다. 게다가 노후 준비도 정퇴자에 비해 뒤져서 퇴직 후 더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미래에셋은퇴연구소의 '730명 중산층 퇴직자 조사'에서 466명의 조기 퇴직자(퇴직 당시 평균 52세)들은 10명 가운데 4명(40.8%)이 "퇴직 후 계층이 하락한 것 같다"고 답했다. 264명의 정년퇴직자가 계층이 하락했다고 답한 비율(28.4%)보다 크게 높다. 조기 퇴직자들이 퇴직 당시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가 더 어렵다는 얘기다.

조퇴자들은 어린 자녀 부양을 위해 창업 등에 나서지만 암초투성이다. 창업 문맹이나 다름없어 폐업률이 높고, 투자 실패나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재취업도 어렵다. 윤씨도 10군데 넘게 이력서를 넣었지만 모두 실패하고 작년부터 주택관리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4050 조기 퇴직자들 창업 실패율 2배

조퇴자들의 불행은 통장에 꼬박꼬박 찍히던 월급이 더는 안 들어오는 데 따른 '불안'에서 시작된다.

조퇴자들은 처음에는 재취업할 자리를 알아보지만 소득이 없다는 불안감에 쫓겨, 섣불리 창업이나 투자에 나섰다가 돈을 날리는 일이 많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퇴자의 32.4%는 퇴직 후 창업을 했고, 이 중 74.2%는 실패했다. 정퇴자의 경우, 퇴직 후 창업률과 창업 실패율이 각각 13.3%, 48.6%로 조퇴자보다 사정이 훨씬 낫다. 창업에 실패한 조퇴자들의 평균 손실액은 약 6500만원으로 이들의 67%는 창업 실패로 인해 "생활비를 4분의 1 이상 줄여야 했다"고 답했다. "생활비를 절반 이상 줄여야 했다"고 답한 비율도 38.4%에 달한다.

조퇴자들은 보통 정년보다 몇 년 앞서 회사를 나오는 대신 위로금을 두둑이 받는다. 하지만 조퇴자들이 들고 있는 목돈은 고수익 투자 미끼를 던지는 금융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10년 전 대기업 부장에서 퇴직한 박모(60)씨는 지인들과 함께 법원 경매를 잘 안다는 법무사 사무장에게 돈을 맡겼다가 3억원 가까이 날렸다. 36평 아파트를 담보로 마련한 돈이라 그 충격으로 3년간 아무 일도 못 했다. 그 사이 아내(59)가 허드렛일까지 해가면서 생활비를 댔다. 퇴직 후 금융 사기를 당한 비율을 보면, 정퇴자(5.7%)와 조퇴자(6%)가 비슷하다. 하지만 금융 사기 평균 피해 금액은 조퇴자(1억5616만원)가 정퇴자(7105만원)의 2배가 넘는다.

◇퇴직 후 급증하는 '계층 추락'

조퇴자들은 창업이나 투자 실패, 금융 사기 등을 겪으며 삶의 질이 급전직하하는 경우가 많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기 퇴직 후 평균 6년이 흐른 시점(설문조사 당시 평균 연령에서 퇴직 당시 평균 연령을 뺀 기간)에 "생활이 여유롭다"고 답한 조퇴자는 4%에 그쳤다.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한 사람은 전체의 68.9%로 정년퇴직자(47.3%)보다 20%포인트 이상 많았다.

생활고를 겪는 조퇴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계층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중산층이라고 답한 비율이 퇴직 전에는 80%였지만 퇴직 후 49.4%로 줄었고, 중산층 아래라고 답한 비율은 퇴직 전 14.8%에서 퇴직 후 50.4%로 늘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조기 퇴직자들은 본인들 생각보다 평균 6년 정도 빨리 퇴직한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정년퇴직자들과 달리 퇴직 이후에 대한 준비도 모자라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자녀 교육 부담도 커서 노후 대비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