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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트렌드+] 회사폰 끄자… '또 다른 내 세상'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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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용 폰·개인 폰 따로 만드는 청년들]

스마트폰 하나 더 개통하거나 소셜미디어선 비밀 계정 운영

일·사생활 분리하는 대안으로

"너무 광범위한 소통 원치 않아"

기성세대 "친해지려 한 건데 억울"

자칫 폐쇄적 인간관계 될 수도

회사원 A(28)씨는 평소 스마트폰을 2개 갖고 다닌다. 하나는 회사용, 다른 하나는 '사생활용'. 일과 사생활 분리가 목적이다. 퇴근 이후나 휴가 중에는 회사용 전원을 아예 꺼버린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거나 다음 날 해도 되는 얘기를 굳이 전날 밤에 전달하는 상사들 때문"이라며 "회사가 업무와 개인 시간을 명확히 구분하고 사생활을 존중해준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를 두 개씩 갖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이들은 회사 업무나 원치 않는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수단으로 '세컨드 폰' '세컨드 계정'을 활용한다. 정말 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번호도, 계정 주소도 비밀이다.

조선일보

/김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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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교사 B(34)씨도 전화번호를 2개 쓴다. 학부모들로부터 매일 쏟아지는 전화와 문자에 지친 그는 퇴근 후 직장용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설정해둔다. 그는 "학부모들이 사소한 일로도 연락을 해오는 데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들까지 지켜보고 있으니 늘 족쇄를 차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C(27)씨는 스마트폰 단말기 하나에 번호를 2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생긴 후부터 2개의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전용 유심 칩을 추가로 구매하거나 월별 3000~5000원 정도의 금액을 통신사에 내고 '세컨드 번호'를 받으면 된다. 회사나 일로 얽혀 있는 사람들에겐 '일 번호'를, 가족과 친구 등에겐 '개인 번호'를 알려준다.

소셜미디어 세컨드 계정을 만드는 일은 스마트폰을 하나 더 개통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간편하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비밀 계정을 만드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다. 비밀 계정에는 자신의 얼굴이나 신상이 드러날 만한 정보는 최대한 감추는 것이 '원칙'처럼 여겨진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일상과 생각을 공유한다.

회사원 D(26)씨도 원래 인스타그램 계정을 한 개만 운영했지만, 최근 들어 '친구 신청'을 해오는 회사 사람이 늘면서 비밀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회사에서 매일 보는 상사·동료에게 '친구 거절'을 했다가는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에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비밀 계정 프로필 사진에 인어공주 사진을 올려놨다는 직장인 김효진(27)씨는 "소셜네트워크는 원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하는 매체지만, 너무 광범위한 소통을 원치 않아 오히려 안으로 더 숨어드는 '아워(our·우리만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셈"이라고 했다.

리서치 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최근 19~59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SNS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세컨드 계정을 갖고 있다는 응답이 26.1%였다. 이 중 38.9%는 프로필에 실명 대신 별명이나 다른 사람의 이름을 썼다. 전체 남성의 27.1%, 여성의 25.1%가 세컨드 계정을 운영했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런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 많다. 회사원 E(41)씨는 "후배와 더 친해지고 싶어서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하려고 했더니 주변에서 뜯어말리더라"며 "한 마디라도 더 나눠보려는 노력이 '꼰대'처럼 비친다니 억울하고 슬프다"고 했다. 직장 생활 12년 차 F(35)씨는 "퇴근 후 꼭 필요한 연락조차 받지 않는 후배가 늘어나니 불편하고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생긴다"며 "전화기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두 개씩 운영한다는 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인데 굳이…"라며 말을 흐렸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회사가 합리적으로 업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원칙 없이 업무 시간 이후 연락을 취하다 보니 생겨난 개인적 대응 조치"라면서도 "인맥을 여러 단계로 나눠 관리하다 보면 자칫 인간관계가 폐쇄적이 되어가고 스스로 높은 담벼락을 쌓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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