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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5060 퇴직자 절반, 노후자금으로 大卒자녀 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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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퇴직자의 눈물<上> 퇴직 부모와 백수 자녀 '이중 실업'

5년 전 퇴직한 한모(62)씨는 연금 등을 합쳐 월 소득이 290만원쯤 된다. 남들은 부럽다고 하지만, 속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서른을 넘긴 아들(33)이 취업준비생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1년 만에 뛰쳐나와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시간을 보내다 작년 초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학원비와 용돈 등 한 달에 12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몸이 아픈 아내의 병원비로 한 달 30만원쯤이 들어간다. 아내 몰래 예금 통장을 조금씩 헐어가고 있다. 재취업을 하려고 하지만, 건물 관리 등도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정년퇴직하고 다 큰 아들을 부양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중산층 출신 퇴직자 가운데 한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중산층 퇴직자 절반 정도는 한씨처럼 대졸 미취업 자녀를 부양하고 있다. 4가구 중 1가구는 퇴직자 아버지와 청년 실업 자녀들이 ‘이중 실업’ 상태에서 부모의 노후 자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퇴직한 50~60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는 역사상 가장 자녀 부양 부담이 큰 세대인 셈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작년 11월 서울·경기 및 6대 광역시에서 만 50세 이상 69세 이하 남녀 은퇴자 7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264명은 정년퇴직(평균 59세)했고, 466명은 명예퇴직 등으로 조기 퇴직(평균 52세)했다. 빚을 빼고 평균 5억7000만원(자택 포함)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었다. 평균 월소득은 355만원 정도였다. 본인과 배우자를 합친 것이고, 노후 자금으로 쌓아둔 예금 등을 헐어서 쓰는 것까지 포함한 금액이다.

◇청년 실업 자녀 업고 허리 휘는 퇴직자들

설문 대상 730명은 최소 45세까지 직장 생활을 한 사람들로 선정해 노후 빈곤을 걱정할 계층은 아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퇴직한 샐러리맨 계층, 중산층들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60% 이상이 퇴직 후 소득(금융자산을 헐어서 쓰는 것 포함)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부족하다”고 답했다. “여유롭다”는 응답은 6.1%에 불과했다. 자녀 부양 부담이 가장 큰 짐이었다. 절반이 넘는 56%가 ‘학업을 마친 미혼 성인 자녀를 데리고 살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자녀 가운데 첫 자녀의 평균 연령을 물어보니 31세였다. 25~29세 30.8%, 30~34세가 36.4%, 35~39세가 20%였다.

조선일보

자료:미래에셋은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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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녀들을 부양하는 상황은 4가지로 나뉜다. 부모의 부담이 큰 순서로 정리하면, 자녀의 생활비는 물론 용돈까지 주고 있는 경우가 18.1%였다. 그 다음으로 생활비는 부담하고 있지만, 최소한 용돈은 자녀가 아르바이트 등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가구가 50.2%였다. 이 둘을 합치면 68.3%다. 3가구 중 2가구는 성인이 된 자녀를 부양 중이라는 뜻이다. 자녀가 본인 생활비를 부담하는 경우는 27.1%, 자녀가 가족의 생활비 전액 혹은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경우는 4.6%였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퇴직한 부모가 취업 못한 자녀를 부양하는 상황은 고령화가 앞선 일본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현상이다. 일본은 정년이 우리보다 길고 잘 지켜졌고, 자녀들도 비정규직 취업 등으로 독립했기 때문”이라며 “중산층이 노후 대비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가 흔들리고, 소비 위축 등으로 경제성장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재산 30%, 자녀 지원에 소모할 판

중산층 퇴직자들은 향후 자녀들의 학업과 취업, 결혼 자금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 큰 자녀들을 부양하는 부담도 크지만, 목돈이 들어갈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많이 꼽은 것은 결혼 자금(74.4%·중복응답)과 주택 마련 자금(49%)이었다. 결혼 자금(예식비,혼수 등)으로 평균 6300만원 정도가 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택 마련(전세 포함)에는 평균 1억5460만원을 도와줄 생각이라고 했다.이것만 해도 2억원이 넘는 돈이다. 퇴직자들이 쌓아둔 노후 자산의 30%가 넘는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소장은 “20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하고 집에 돌아온 중산층 퇴직자들이 취업하지 못한 자녀들을 부양하면서 허리가 휘고 있다”면서 “생활에 여유가 있다고 답한 6%를 제외하고는 노후 대비가 힘에 부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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