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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또 다른 식욕억제호르몬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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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관찰과 정밀한 실험이 잘 알려진 단백질의 예상치 못한 기능을 밝힐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리처드 팔미터


1950년대 미국 잭슨연구소의 연구자들은 특이한 돌연변이 생쥐를 얻었다. 이들은 식욕을 주체하지 못해 고도비만이 된 이 녀석에게 뚱보(obese)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줄여서 ob생쥐라고 불렀다. 이 형질은 열성으로 유전됐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식욕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고장 난 결과라고 추측했고 이 유전자를 찾기 시작했다.

오랜 노력과 치열한 경쟁 끝에 1994년 미국 록펠러대 제프리 프리드먼 교수팀이 마침내 생쥐의 6번 염색체에서 ob 유전자를 찾는데 성공했다. ob 유전자는 아미노산 167개로 이뤄진 작은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었고 생쥐의 몸에서 이 단백질을 추적한 결과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 역할을 하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이 호르몬에 ‘마르다’는 뜻의 그리스어 렙토스에서 따온 ‘렙틴(lept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쥐(물론 사람도)가 먹이를 먹으면 지방세포가 렙틴을 분비하고 렙틴이 혈관을 타고 뇌로 들어가 식욕중추인 시상하부에 도달해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식욕이 떨어져 그만 먹게 된다. 다이어트 시장의 혁명을 예감한 미국 생명공학회사 암젠은 프리드먼 교수에게 2000만 달러 (약 230억 원)를 지불하고 독점사용권을 얻었지만 이어진 임상에서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비만인 사람들에게 인슐린 주사를 맞는 수준으로 외부에서 렙틴을 넣어줘서는 약발이 안 들었다.

암젠의 입장에서는 낭패였지만 렙틴의 등장은 비만을 심리(의지)의 문제에서 생리(호르몬)의 문제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뒤 식욕에 관여하는 여러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발견됐다. ‘먹어야 사는’ 동물의 숙명을 생각할 때 식욕이 이처럼 복잡하게 조율되는 건 수긍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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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리포칼린2(LCN2)가 식욕억제호르몬 작용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쥐가 먹이를 먹으면 뼈의 조골세포(osteolast)가 리포칼린2를 분비한다. 리포칼린2는 순환계를 거쳐 뇌의 시상하부에 도달해 수용체(MC4R)에 달라붙어 식욕을 억제한다. - 네이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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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에 발견된 단백질

학술지 ‘네이처’ 3월 16일자에는 영향력에서 렙틴에 버금가는 새로운 식욕억제호르몬을 보고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컬럼비아대 스타브로울라 코우스테니 교수팀은 뼈의 조골세포(osteoblast)가 분비하는 리포칼린2(lipocalin 2, LCN2)가 시상하부에 있는 수용체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리포칼린2는 새로운 단백질이 아니다. ob 유전자와 그 산물인 렙틴이 밝혀진 1994년에 리포칼린2의 존재도 보고됐다. 23년이 지난 이제야 식욕억제호르몬이라는 실체가 밝혀진 건 그동안 초점이 면역 분야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리포칼린2는 선천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즉 박테리아가 침투하면 면역세포인 호중구가 리포칼린2를 내놓는다. 리포칼린2는 박테리아가 철을 흡수하기 위해 분비하는 사이드로포어(siderophore)를 붙잡아 없앤다. 그 결과 박테리아의 증식이 억제된다. 2004년 면역학자들은 리포칼린2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를 만들었지만 그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비만이라는 데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컬럼비아대 코우스타니 교수팀은 내분비기관으로서 뼈를 재조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방세포가 렙틴을 비롯해 여러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게 밝혀지면서 지방이 단순히 저장기관이 아니라 내분비기관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듯이 최근 뼈에서도 오스테오칼신(osteocalcin)과 FGF23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뼈의 새로운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 연구팀은 뼈에 또 다른 호르몬이 있나 알아보다가 뜻밖의 월척을 건진 것이다.

렙틴과 마찬가지로 생쥐가 밤새 굶으면 혈액 내 리포칼린2 수치가 뚝 떨어진다. 그러다 먹이를 먹으면 수치가 세 배 정도 늘어나고 한 동안은 섭식 활동을 하지 않는다. 16주 동안 혈중 농도가 평소의 두 배가 될 정도로 매일 리포칼린2를 주사해 그렇지 않은 생쥐에 비해 먹이를 18% 덜 먹었다. 그 결과 체지방이 32% 적고 몸무게도 9.4% 덜 나갔다. 사람으로 치면 매일 리포칼린2을 10밀리그램씩 주사한 셈인데, 이런 효과가 재현될지 궁금하다.

연구자들은 리포칼린2 역시 혈관을 타고 식욕중추인 시상하부에 도달해 작용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확인실험을 했는데 정말 그랬다. 즉 시상하부에 있는 MC4R이라는 수용체에 달라붙어 식욕억제회로를 작동시켰다. 흥미롭게도 아동비만의 5%, 성인비만의 0.5~2.5%가 MC4R 유전자의 변이형과 관련돼 있다. 즉 리포칼린2의 식욕억제신호를 제대로 받지 못해 과식한 결과 비만으로 이어진 사람이 꽤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방조직에서 식욕억제호르몬을 분비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뼈에서도 식욕억제호르몬을 분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모른다면서도 체내항상성 유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즉 골 질량의 증감과 리포칼린2 유전자 발현량이 연동돼 몸이 영양을 필요로 하는지 여부를 알려줘 이에 맞는 행동을 하게 유도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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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를 만드는 재료 가운데 하나인 우리딘(uridine)이 ‘굶주림 신호분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먹이를 먹지 못한 생쥐의 지방세포에서 우리딘이 분비돼 혈중 수치가 높아지면 답즙 분비가 줄고 미토콘드리아의 세포호흡이 떨어지고 체온이 내려가 에너지 소모를 줄인다. 또 식욕억제호르몬으로 알려진 렙틴이 우리딘의 작용을 견제하며 세포의 에너지 항상성 유지에 기여한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 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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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틴과 우리딘, 체온조절에 관여

한편 학술지 ‘사이언스’ 3월 17일자에는 굶주림 신호 분자를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대 필립 셰러 교수팀은 굶주릴 경우 지방세포가 우리딘(uridine)을 분비해 몸이 대응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혈중 우리딘 수치가 올라가면 체온이 떨어지고 산소 소모량이 감소한다. 몸의 대사율을 낮춰 최대한 버티기 위해서다. 영양을 섭취하면 혈중 우리딘 수치가 내려가고 체온이 회복된다.

물론 포유동물 같은 정온동물에서 이런 온도 변화의 폭이 크지는 않다. 예를 들어 생쥐를 24시간 굶길 경우 체온이 1.8도 정도 내려간다. 그러나 체온을 유지하는데 에너지가 꽤 들기 때문에 기준이 이 정도만 내려가도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딘의 에너지 항상성 조절에 렙틴이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렙틴은 식욕을 억제할 뿐 아니라 우리딘의 작용도 억제한다. 지방세포는 굶주릴 때는 우리딘을 배부를 때는 렙틴을 분비해 항상성을 맞춘다는 말이다. 렙틴을 못 만드는 ob 생쥐의 경우 평소 혈중 우리딘 수치가 높고 24시간 굶을 경우 체온이 무려 7.3도나 떨어진다.

비만인 동물이나 사람에서 체온조절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가 많은데 렙틴과 우리딘 회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영양을 충분히 섭취했음에도 혈중 우리딘의 수치가 신속히 떨어지지 않으면 대사율이 올라가지 않아 체온이 빨리 회복이 되지 않고 그만큼 에너지를 덜 쓰게 돼 비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몸이 찬 사람은 살찔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우리딘은 앞에 소개한 리포칼린2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려진 분자다. RNA의 네 염기 가운데 하나인 우라실(uracil)에 오탄당인 리보오스가 붙은 게 바로 우리딘이다(이런 구조를 뉴클레오시드(nucleoside)라고 부른다). 우리딘에 인산기가 붙은 UTP(이런 구조를 뉴클레오티드(nucleotide)라고 부른다)가 RNA분자를 만들 때 쓰이는 벽돌이다.

사실 신호분자로 유명한 뉴클레오시드는 아데노신(adenosine)이다. RNA와 DNA를 이루는 염기의 하나인 아데닌(adenine)에 리보오스가 붙어 있는 아데노신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로 뉴런이 피로해졌을 때 이를 회복시키는 작용을 한다. 일을 많이 하면 피곤하고 졸리는 것도 뇌세포에 아데노신 농도가 높아진 결과다. 뉴런의 아데노신 수용체에 달라붙어 이런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이 바로 카페인이다. 커피를 먹으면 한동안 정신을 말똥말똥해지는 이유다.

문득 의지보다는 몸 속 호르몬과 신호분자가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큰 게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식욕은 물론이고 성욕, 수면욕, 심지어 모성까지 행동의 동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 분자와 만나게 된다. 물론 의지로 욕구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도를 닦지 않는 이상 늘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연구들을 접할 때마다 특정 호르몬이나 신호분자가 지나치거나(또는 수용체가 민감) 부족한(또는 수용체가 둔감) 유전형을 지닌 결과 사회적 기준에서 정상이라는 범위 밖의 욕구를 지니게 되고 그 결과로 이어진 행동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 될 것 같아 안타깝다.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의 행동도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관용을 보여야하지 않을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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