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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50돌]한국경제 성장과 궤같이 한 대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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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한때 삼성을 제치고 재계 서열 2위에 올랐던 대우그룹은 한국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 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한국 경제에 있어 대우그룹은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기업 중 하나다.

대우그룹의 전신인 대우실업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무역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해외에서 ‘대우’ 브랜드의 영향력은 견고하다.

1980년 중화학공업이 한국경제의 주축이던 시절, 대우그룹은 조선·반도체·자동차 등 산업 전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재계를 이끌었다. 1990년 들어 대우그룹은 1970년대부터 공들인 해외 시장을 필두로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독려했다.

대우그룹의 전신인 대우실업은 1967년 3월 당시 32세였던 김우중 회장(대우 창업주)이 자본금 500만원으로 설립한 무역회사이

다. 김 회장은 서울 명동에 20평짜리 허름한 사무실에서 셔츠 내의류 원단을 동남아시아에 수출했다. 규모는 작았지만 이후 업계 영향력은 대기업 못지 않았다. 대우실업의 사업은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맞물려 호황을 누렸고 이듬해 대우실업은 대통령 산업표장을 받으며 무역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김 회장은 해외 진출에 공을 들였다. 1969년 대우실업은 호주시드니에 국내 최초로 해외지사를 세웠다. 당시 정부가 강조한 수출중심정책과 대우실업의 추진 방향이 맞아떨어지면서 김 회장의 해외 시장 개척은 탄력을 받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철학을 지닌 김 회장은 수단(1976), 리비아(1978), 중국(1988), 알제리(1989), 베트남(1992), 라오스(1993) 등 미수교국에 최초로 진출하며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특히 김 회장은 1년에 2/3이상을 해외출장을 떠나며 세계 경영이라는 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전략거점인 동구권과 옛 소련 등에 투자계획이 수립되면 곧바로 현지에서 대통령과 국왕 등 국가원수와 만나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 결과 ‘해가 지지 않는 대우 제국’이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다.

1971년 미국이 도입한 섬유수출 쿼터제를 대비해 우리나라는 대미 섬유수출 40%를 확보, 대우는 기반을 다져 업계를 평정, 이듬해 국내 무역실업 2위에 올랐다. 1975년에는 대우실업이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되기도 했다.

대우실업은 무역업과 함께 규모 확대에도 힘을 쏟았다. 당시 한국경제는 경공업 중심에서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기계설비, 전자 등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옮겨졌다.

대우실업은 1976년 한국기계공업㈜를 인수해 대우중공업으로 성장시켰으며 1977년 대우센터를 준공, 1978년 후에 대우자동차로 불린 새한자동차 한국측 지분 50%를 인수했다. 1978년 10월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를 인수해 대우조선으로 성장시켰다. 같은해 대우실업㈜는 수출1위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0년대 한국 경제는 중화학 공업에 대한 과잉 투자와 1979년 제2차 석유 파동, 국내 정치의 불안 등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중반 이후 저유가·저금리·저달러 등 3저 호황에 힘입어 빠른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산업용 전자 등 기술 집약형 산업이 성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대우실업은 국내외 경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성장을 이끌어 냈다. 1982년 이름을 ㈜대우로 바꾸고 그룹으로 외형을 바꿨다. 국내외로 기업 경영에 변수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1983년 국내 최초의 단일 상사로 월간 수출 5억 달러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끌어 냈다.

이후에도 대우그룹은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1993년 창립 26주년을 맞아 김우중 회장은 ‘세계경영’을 선포하고 중공업과 자동차 부문에서 고속성장을 이끌어 냈다.

기업의 규모는 현대그룹, 삼성그룹, LG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1998년 4월에는 삼성그룹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에 올랐으며 1995년 해외진출 기업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발생한 IMF(국제통화기금)의 벽을 넘진 못했다. 당시 김영상 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추진과 함께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등 경기 부양책을 내놨지만 외환위기는 막진 못했다. 한국 경제는 휘청거렸고 기업들도 위기 극복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러한 경제 상황 속에서 대우그룹은 쌍용 인수를 추진했다. 결국 외환위기와 외형확장에 따른 자금난이라는 악재가 맞물리면서 창립 32년만에 대우그룹은 해체됐다.

임주희 기자 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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