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아들 부시(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뒤 미국에서 'ABC(Anything But Clinton)'라는 말이 유행했다. 전임 클린턴 대통령이 한 일이라면 뭐든지 뒤집는다 해서 미 언론들이 그런 표현을 썼다. 클린턴이 대북 유화책을 썼으니 우리는 강경책을 쓴다는 식이었다 한다. 8년이 흘러 2009년 오바마 정권이 출범한 뒤에는 또 다른 의미의 'ABC(Chris)'가 등장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미대사가 큰 영향을 미쳤던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과 정반대로만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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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지우개 국정'으로 치면 트럼프 대통령이 단연 손꼽힐 듯하다. 전임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오바마 케어)을 되돌리는 것은 그나마 내정에 관한 일이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같은 국제 무역협정까지 뒤집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자신의 가장 자랑스러운 일로 작년 9월 체결된 파리 기후협약을 꼽았다. 트럼프는 이것마저 파기하겠다고 한다.
▶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이 온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ABP(Anything But Park·박근혜만 아니면 뭐든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정권 교체가 임박했다는 신호다. 야권이 박근혜 전 대통령 정책이라면 다 지우겠다고 덤빈다. 한·미 동맹 차원의 결정인 사드 배치, 한·미·일 3국이 협의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같은 안보 문제까지 똑같이 취급한다. 박 정권 사람들은 아예 '부역자'다.
▶정권이 바뀌면 변화를 주는 게 불가피할 것이다. 어느 정도 사람 바꾸는 것도 물 흐르는 이치에 가깝다. 그러나 적폐 대청소 하겠다고 덤비다가 국정의 기본까지 청산해버릴까봐 걱정이다. 그것이 나라 지키는 안보, 국민 먹여살리는 경제라면 두말할 필요 없다. 처칠은 현재를 과거와 경쟁시키면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라 했다. 열기에 들뜬 야권 사람들이 한 번쯤 되새겨볼 말이다.
[신정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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