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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60代 대 60代… 일자리 전쟁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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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자료=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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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김모(65)씨는 요즘 앞길이 막막하다. 일감을 얻어보려고 인력사무소를 매주 찾아가는데 매번 퇴짜를 맞는다. 그는 "며칠 전에는 '60대 초반도 수두룩한데 당신 같은 노인이 무슨 일을 찾느냐'는 말을 듣고 잠을 못 잤다"고 푸념했다. 그는 "주변에 나처럼 노후 대비를 못해 밥벌이를 해야 할 친구들이 수두룩하다"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경기도로 나가볼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윤재진(52) 대표는 "요즘엔 60세 안팎의 구직자가 넘쳐나 대형 건설 현장은 만 62세부터는 일용직으로도 안 받는다"고 말했다.

711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생)가 본격적으로 퇴직하기 시작하면서 노년층의 일자리 구하기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특히 60대 초반의 '젊은 노인'들이 인력 시장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60대 후반 노년층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일자리 사정은 노후 빈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젊은 노인들이 60대 후반 일자리 잠식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60세 이상 노인 실업률은 7.1%로 통계를 작성한 1999년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실업자 수도 작년 2월보다 5만4000명이 늘어 역대 최다인 27만3000명을 찍었다. 지난 2월 역대 둘째로 높은 실업률(12.3%)을 기록한 청년(15~29세)만큼 노인 실업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고령화로 노인 인구 자체가 증가한 데다 그동안 경제활동을 안 하던 노인들이 생활고 탓에 '나도 벌어야겠다'며 구직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노인 일자리 시장에서 특이한 현상은 비교적 젊은 60대 초반 노인들이 60대 후반 노인들을 고용시장에서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통계를 '젊은 노인'인 60~64세와 65세 이상 노인으로 나눠보면 지난 10년간(2008년 2월~2017년 2월) 젊은 노인 실업자가 2.4배(2만7000명→6만4000명) 증가하는 동안 60대 후반 실업자는 10.9배(1만9000명→20만8000명)나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인구가 많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2015년부터 60대로 편입되면서 심화됐다. 2015~2017년 2월 60~64세 노인 실업률은 3.4~3.5%로 변함이 없는 반면 65세 이상 실업률은 7.4%에서 10.3%로 뛰었다. 10.3%는 역대 최고치다. 2015년 2월 3175명이던 60세 이상 취업자는 지난달 3592명으로 417명 늘었는데 이 중 292명(70%)이 60~64세였다. 60~64세 인구가 307만명으로 65세 이상 인구(710만2000명)의 절반도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쏠림 현상이 심한 셈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는 현장에서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하우가 살아 있고 은퇴 후 쉬었던 이전 세대와 달리 퇴직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고용노동부 하헌제 고령사회인력정책과장은 "안 그래도 노인 일자리가 부족한데 그마저도 상대적으로 젊은 노인이 잠식해 60대 후반 노인은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수 자녀 가진 노년층, 취업 전선으로
취업하지 못한 자녀들을 데리고 사는 노년층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두 세대에 걸쳐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는 자녀들이 오랫동안 취업에 실패하면서 노년 부모들이 대신 일자리를 찾아 나오고 있지만 요즘엔 경비원이나 음식점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세종시에 사는 가정 주부 B(60)씨는 지난겨울부터 베이비시터(보모) 일자리를 찾고 있다. B씨는 "서울로 유학 보낸 30대 딸이 아직도 취업이 안 돼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며 "남편은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했고 갖고 있는 재산이라고는 집 한 채밖에 없어 올해부터는 나라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B씨는 "최근 경기가 안 좋아 베이비시터 자리도 3개월째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최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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