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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고민에 ‘손편지’ 답장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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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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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고당길에 익명의 고민 편지를 받는 ‘온기우편함’을 설치한 대학생 조현식씨가 우편함에 들어온 편지를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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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덕성여중으로 가는 감고당길에 세워진 작은 우편함 하나. 17일 오후에도 지나가던 20대 여성 둘이 우편함에 기대거나 쪼그려 앉아 편지를 썼다. 겉면에 ‘온기우편함’이라고 적힌 이 우편함에 익명으로 ‘고민 편지’를 넣으면 손편지 답장을 받을 수 있다. 설치된 지 20여일 만에 우편함에 들어온 편지는 500통을 넘겼다.

지난 2월28일 설치된 ‘온기우편함’은 한양대 국제학부 휴학생인 조현식(27)씨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다가 문득 떠올린 아이디어의 소산이다. 이 책에선 과거에서 온 고민에 대해, 현재를 살고 있는 주인공이 답장을 한다. 조씨는 “편지 한 통으로 고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작은 손편지 한 장에 마음을 담아 힘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온기우편함 옆엔 편지지와 봉투가 함께 담겨 있다. 누군가 고민이 담긴 편지를 우편함에 넣으면 조씨가 ‘점원’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답장을 보낸다. ‘점원’ 60여명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의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대다수지만, 40~50대도 있다. 대부분 조씨가 인터넷에 올린 모집글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이달 초 ‘점원’이 된 대학원생 김수영(29)씨는 “주말에 짬을 내 5통씩 답장을 쓴다”며 “편지에 고민을 토로한 사람의 마음이 애틋해서 먼저 감동받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점원들은 편지가 들어오면 다 같이 돌려 읽는다. 가장 적합한 점원이 답장을 쓰기 위해서다.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보내온 편지엔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위해 하는 말이 강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지, 정말 아이를 위한 길이 무엇일지’ 등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었다. 이 편지는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점원이 답장을 썼다. 30대 여성이 이민 계획과 관련한 고민을 담아 쓴 편지엔 50대 점원이 자신의 경험과 연관지어 연필로 꾹꾹 눌러쓴 답장을 보냈다. 지금껏 받은 가장 귀여운 고민 편지는 ‘너무 못생겨서 고민’이라며 ‘같은 반 친구가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7살 아이가 삐뚤빼뚤 쓴 편지였다.

우편함이 설치된 지 20일 남짓, 전자우편이나 메신저와 비교하면 전송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데도 일주일에 들어오는 편지만 150~200통이다. 편지지를 집으로 가져가 빽빽하게 1~2장 넘게 써서 우편함에 넣어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조씨는 “가까운 사람보다도 모르는 사람한테 털어놓는 고민이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해결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온기와 위로가 담긴 손편지를 받아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편지지와 편지봉투, 우표 등의 비용을 조씨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조씨는 “나중엔 소셜 벤처로 발전시키고 싶다.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고민을 적고 답장을 써줄 수 있는 고민 카페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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