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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외교 데뷔 틸러슨, ‘속빈 행보’로 한계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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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틸러슨 한·중·일 순방 성적표

구체적 방책은 없이 ‘레토릭’만

“대북 군사행동” 등 잇단 거친 발언

전문성 떨어지고 혼란 키웠다 지적

WP “중국에 외교적 승리 안겨줘”

트럼프 “김정은 매우매우 나쁘게 행동”

미-중, 정상회담 앞 물밑 신경전 예고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5~19일 한·중·일 순방으로 아시아 외교무대 첫 데뷔전을 치렀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틸러슨 장관의 대북 정책 관련 발언 내용을 보면, 선언만 있을 뿐 ‘어떻게’가 빠져 있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17일 한국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그가 제시한 대북 정책 해법을 보면 단기적으로는 여전히 ‘전략적 인내’에 가깝다. 틸러슨 장관은 “핵무기를 포기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북-미 대화’를 북핵 포기에 따른 대가로 여겼던 오바마 행정부의 인식과 같다. 틸러슨 장관은 또 북핵 해법으로 ‘대북 제재 수위 높이기’와 ‘중국 역할론’을 반복해서 언급했는데, 두 정책은 ‘전략적 인내’의 핵심이다.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고 천명하려면 그에 걸맞은 대안과 실행 방안이 뒷받침돼야 하는데도, 알맹이 없이 ‘레토릭’(말치장)만 앞세운 것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유세와 상당히 닮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 대북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있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20년간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며 “미국이 1995년 이후 13억달러를 북한에 제공했음에도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존 딜러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시엔엔>(CNN)에 “미 대북 정책의 역사는 복잡하다. 단순히 ‘13억달러를 썼지만 얻은 게 없다’는 식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며 “얕은 지식이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정제되지 않은 정책들을 쏟아낸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이나 한·일 핵무장 허용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중국 및 북한을 향한 압박 및 경고 성격이 짙은데, 이에 따른 혼란은 중국보다 한국이 더 겪는 모양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것저것 다 던져본 뒤 상대방 태도에 따라 핵심 선택 방안을 들이미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문어발 사업’ 방식으로 외교를 하면, 상대국의 불신을 불러 결국 제 살 깎아먹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틸러슨 장관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중국 매체들과 서구 매체들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홍콩 <명보>는 20일 틸러슨 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와 왕이 외교부장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각각 얘기한 “미국은 충돌·대항하지 않고 상호존중 및 협력해서 ‘윈윈’하고 싶다”고 한 내용이, 사실상 시 주석이 2015년 9월 미국을 방문해 제안했던 ‘중-미 신형대국관계’와 같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오바마 정부는 당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정부가 오바마 행정부보다 오히려 중국 쪽 입장을 선선히 받아준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틸러슨은 베이징에 외교적 승리를 안겨준 듯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부 비평가들은 틸러슨이 너무 숙였다고 본다”며, 중국 입장에서 그가 언급한 ‘상호존중’은 ‘핵심이익’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곧 미국이 대만, 티베트, 홍콩 등 중국이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모든 문제에서 물러선다는 뜻이 된다. 중국에 이런 점을 양보하고서도, 북한이나 교역 문제에서 미국이 챙겨야 할 것은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틸러슨 장관이 중국과의 북핵 논의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 외에는 사실상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탓에, 다음달 초 미국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중 간 치열한 물밑 샅바 싸움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제재 압박 확대에 중점을 둔 강경기조를 밀어붙이면서 중국 쪽 반응을 좀 더 떠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북한 및 중국 관련 회의를 했다며, “그(김정은)는 매우매우 나쁘게 행동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미-중 정상회담과 이어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답방 과정에서 북핵·사드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 등을 놓고 미-중 간 ‘빅딜’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 베이징/이용인 김외현 특파원, 김지은 기자 yyi@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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