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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官주도 정책-문화계의 의존성…‘블랙리스트’를 키운 두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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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硏, 심포지엄서 지적

톱 다운 방식 일방적 지원정책

문화예술 생태계 균형 깨트려

차이 인정 않는 문화도 한몫

공공정책-민간역할 재정립 시급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문화행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작금의 사태가 관 주도의 문화정책이 빚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간영역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키우는 대신 나눠주기식 지원으로 일관하다 보니 문화예술계가 자기성장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지원사업을 좇는 형국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17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마련한 ‘새 정부, 새로운 문화정책, 새로운 구도’란 주제의 심포지엄에서는 관 주도의 문화정책이 낳은 폐해에 대한 질타와 함께 새로운 문화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헤럴드경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 사과 성명을 내고, “문화예술인과 국민 여러분께 크나 큰 고통과 실망, 좌절을 안겨드렸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 자리에서 경희대 경영대학원 박신의 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는 그동안의 톱 다운 방식의 일방적 예술지원정책이 문화예술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문화정책이 시스템적으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건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새 예술정책’은 예술계의 다양한 목소리와 참여를 기반으로 삼았다. 이 때,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예술의 자율성을 담보한 예술위원회로 바뀌고 문화예술교육정책,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 등 법 제도적 측면의 기반이 갖춰졌다. 문화도시, 창조도시는 그런 문화의 자율성, 다양성을 바탕으로 추진됐다. 이런 정책 기조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관리형으로 축소된다. 그 결과 민간 차원의 전문성 개입이 제한되면서 예술지원 정책은 급속하게 보수화된다.

박 교수는 문화예술 거버넌스의 실현이랄 문화예술진흥원의 위원회로의 전환이 무색해졌으며, 이번 블랙리스트 사태에 예술위가 실행에 나선 건 바로 그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관 주도의 예술지원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사업에 치중하는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예술형 도시재생 프로그램, ‘꿈의 오케스트라’를 필두로 한 소외계층 예술교육 등으로 문화부만이 아니라 국토부, 교육부, 복지부 등 천편일률적인 사업들이 이어졌다. 지자체의 ‘벽화마을’사업이나 ‘문화가 있는 날’도 마찬가지다.

문화융성위가 정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의 경우, 국민 인지도(57%)에 비해 문화시설의 참여율(38%)은 저조한 상황이다. 이는 중앙에서 ‘문화가 있는 날’ 참여를 주도한 결과로, 준비가 안된 지자체 문화예술기관이나 민간 예술기관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국공립 문화시설의 경우, 자체 수익성을 제고해야 하는 압박 속에서 무료 관람이나 티켓 할인이라는 수익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참여를 독려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박 교수는 관 주도의 문화정책은 단기에 제도를 갖추고 안정화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현실에서 민간영역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불균형이 거꾸로 관 주도를 정당화하는 현상을 낳고 민간영역은 자기 성장의 기회를 만들지 못해 지원에 더욱 의존적이 돼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를 비롯한 모든 형태의 문화노동자들이 자생력을 갖기는 어렵다. 따라서 톱 다운 방식의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민간영역의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 구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이와함께 사회의식 측면에서 블랙리스트 사태가 불거진 근본요인으로 뿌리깊은 냉전 의식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문화도 원인으로 꼽았다.

추미경 문화다움 대표 역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원인을 예술지원정책의 원칙이 분명하지 않은 채 공공지원 의존도가 높아진데서 찾았다. 예술활동에 대한 지원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한계도 문제다. 따라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배제된 예술가들에 대한 금전적 보상정책은 근본적 대책이 아니며, 공공정책과 민간영역의 역할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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