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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미모맛집 ⑨ 통영 분소식당 - 도다리쑥국, 이거 한그릇 비워야 비로소 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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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실투실 도다리와 싱그러운 쑥의 만남

맛의 비밀은 섬마을에서 뜯은 해쑥

남해안 지방에는 봄의 전령이라 불리는 음식이 있다. 바다의 싱싱함과 뭍의 싱그러움이 만나 입안에서 봄을 틔우는 도다리쑥국이다. 남쪽 갯마을 사람들은 화려하지 않은 생선국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봄이 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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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국. 통영 사람들은 이 단출한 생선국으로 몸과 마음에 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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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모 모양의 짙은 누런색을 띠는 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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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는 목포?통영?거제?부산 등 남쪽 바다 전역에서 2~5월 잡힌다. 가장 맛있을 때는 3월. 2월에 잡는 것은 살이 덜 찬 것이 많다. 씨알이 작은 도다리는 쑥국 대신 회로 먹는다. 3월이 돼야 도다리가 퉁퉁하게 살찐다. 넓적한 마름모 모양의 짙은 누런색을 띠는 도다리는 광어와 비슷하다. 구분법은 간단하다. 눈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 왼쪽에 있으면 광어다. ‘좌광우도’란 말이 나온 연유다.

2월 말부터 통영에 있는 거의 모든 횟집에서 도다리쑥국을 팔기 시작한다. 서호시장에 있는 분소식당(055-644-0495)은 50년 가까이 된 집이다. 이 집 도다리쑥국을 먹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영업시간은 오전 6시~오후 4. 오전 8시만 돼도 도다리쑥국(1만3000원)을 먹겠다는 사람들로 식당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는 서호시장의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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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도다리쑥국 맛집으로 꼽히는 분소식당. 분소식당엔 오전 8시부터 긴 줄이 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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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재미
줄을 서서 기다려도 별로 지루하진 않다. 자연스레 도다리쑥국 끓이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오히려 재밌다. 주문이 들어오면 가게 밖 수조에서 도다리를 꺼내 잡는다. 도다리 배를 가르자 희고 물컹한 것이 흘러나왔다. 이리(정액)였다. 요리사는 날카로운 칼로 도마를 쓱 훑어 이리를 그릇에 담았다. 도다리쑥국은 수놈으로 끓이는 것이 맛있는데 바로 이 이리 때문이다. 이리가 들어가야 국물이 깊은 맛을 낸다.

도다리 잡는 것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대기 줄이 줄었다. 손님들 대부분 도다리쑥국을 시켜 후루룩 마시다시피 하고 가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10분 내외로 길지 않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주방이 보였다. 갓 잡은 도다리는 곧장 주방으로 옮겨진다. 팔팔 끓는 물에 도다리를 넣고 익힌다. 이때 된장은 약간만 풀고 다진 마늘과 소금을 투하한다. 중요한 건 된장은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것. 유난히 깔끔한 국물 맛을 내는 분소식당만의 노하우다. 도다리가 익으면 손님에게 나갈 그릇에 옮겨 담는다. 도다리를 끓여낸 국물에 쑥과 고추를 넣고 살짝만 익힌다. 쑥이 숨이 죽으면 도다리를 담은 그릇에 쑥과 국물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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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실토실 살이 오른 도다리와 해쑥이 만나 최고의 맛을 내는 도다리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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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식탁에 도다리쑥국이 등장했다. 맑은 국물에 뽀얀 도다리 살과 푸른 쑥이 둥둥 떠있는 도다리쑥국은 단출한 모습이었다. 대신 그윽한 쑥 향이 코를 사정없이 공격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은 한 술 떴다. 처음엔 청양고추의 알싸함이 입안을 휘감더니 마지막엔 깊은 쑥 향이 지배했다. 도다리 살도 한입 배어먹었다. 푹 익은 도다리 살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느껴졌다. 한 그릇을 비우고 나자 몸에 열기가 돌았다. 아니 봄기운이 돌았다.

알쏭달쏭 도다리 제철
사실 도다리의 제철을 두고는 말이 많다. 생선은 보통 산란기를 앞두고 살을 찌웠을 때 ‘제철’이라는 표현을 쓴다. 알을 낳고 나면 살이 물러져 맛이 떨어진다. 도다리 산란기는 초겨울로 알려졌다. 하여 산란 후인 봄에는 맛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일본에선 도다리의 제철을 가을로 본다. 그러나 통영에서는 예부터 ‘봄 도다리’를 으뜸으로 쳤다. 3월 중·하순부터 4월까지 가까운 남해 바다에서 도다리를 가장 맛있다고 했다. 산란 후 다시 몸을 찌우기 위해서 부지런히 먹이활동을 했기 때문에 3~5월에 잡히는 것도 산란 전만큼 육질이 쫀득하고 맛도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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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향이 짙은 해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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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국이 봄철 별미로 알려진 것은 사실 쑥 때문이다. 한산도?소매물도?비진도?욕지도 등 통영 앞바다 섬에선 3월부터 해쑥이 난다. 겨우내 바닷바람을 맞으며 몸을 키운 해쑥은 유난히 향이 짙다. 4월이 지나면 해쑥은 전부 자취를 감춘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나 냉동 보관한 쑥은 질기고 향이 금방 날아간다. 극한의 겨울을 견딘 해쑥이 들어가야만 제대로 된 맛을 내는 도다리쑥국은 진정한 봄의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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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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