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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현장취재] 한날 한시에 외친 '멸공'과 '국민주권'…3·1절 집회 속 갈라진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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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다녔다. 태극기와 성조기 아래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과 '선진국의 아버지'가 적힌 깃발을 한 시민이 펴 보고 있다./이범종 기자


1일 아침 10시 서울역 앞에는 '3·1절 구국기도회' 무대가 세워지고 있었다. 나라사랑기독인연합이 준비한 행사장 주변 모금함 앞에선 노숙인과 이석인 대한당 총재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자신을 "목사이자 선교사"라고 소개한 이 총재는, 행사장 근처에서 노숙인이 술 마시고 드러누운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상황은 곧 마무리됐다. 해병대 차림의 행사 참가자와 노숙인이 해병 선후배 사이임을 확인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이 총재는 "멸공과 종북 척결을 위해 작년 2월에 창당했다"며 "대한당은 모금에 관여하지 않고 행사를 도우러 왔다"고 설명했다. 주변에는 '종북 척결' 연설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행사 관계자는 "단체는 다르지만 (태극기) 집회는 합동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11시 열리는 기독교 집회와 오후 2시에 시작되는 15차 태극기 집회가 사실상 한 행사라는 설명이다.

이날 시청 주변에서 배포된 '애국일보' 8면에도 11시 기독교 집회가 '1부'로 표기돼 있었다. 10시 30분께 숭례문 근처에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시민들이 시청과 서울역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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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집회 현장 곳곳에선 각종 서적이 판매되고 있었다. '태극 물결 명령이다 계엄령을 준비하라'는 권당 1만원에 팔리고 있었다./이범종 기자


◆태극기 집회 참가자 "촛불 목적은 적화통일"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던 김인수(54) 씨는 3·1절에 성조기를 든 이유를 묻자 "나눠주는데 태극기와 똑같이 중요한 국기를 버리느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같은 날 오후 열리는 촛불 집회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국민을 둘로 갈라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심판할 수 있어? 못해. 아무리 아버지 어머니가 잘못했다 치더라도 심판을 못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어머니라는 뜻이냐'고 묻자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부모하고 똑같은 거야. 대통령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시청 앞 광장에 도착하자,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시민들을 설득해 성조기를 자신의 가방에 넣는 시민이 보인다. 정은혜(78·여) 씨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성조기는 3·1절에 맞지 않으니, 오늘은 들지 말고 다음에 들으라' 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대형 성조기를 어깨에 걸친 남성이 광장을 가로질러갔다.

정씨는 "촛불 든 사람들의 목적은 박 대통령 탄핵뿐이 아니라, 이 나라의 적화통일"이라고 주장했다.

성조기는 평소보다 판매량이 적었다. 시청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파는 이모(62·여) 씨는 "오늘 성조기가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팔린다"며 "태극기는 평소만큼 나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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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는 빗속에서 열렸다. 주최측은 이날 청와대와 헌재 행진을 시작하기 전 "20만 명이 왔다"고 주장했다./이범종 기자


◆박원순 '촛불' 무대 오르자 반대편서 '멸공의 횃불'

"주여! 주여! 주여!" 태극기 물결이 향하는 광화문 광장 주변에선 전광판과 스피커를 통해 격정적인 기도가 쏟아졌다. "이~ 민족을 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나이다, 하나님!" 이때, 함성이 울리는 인파 속에서 눈 감고 두 손을 가슴에 얹은 시민이 보인다.

태극기 집회 현장에선 각종 서적도 팔리고 있었다. 이 가운데 '태극 물결 명령이다 계엄령을 준비하라'는 권당 1만원에 팔렸다. 장문정 한국인문대학 출판부 직원은 "첫 집회 때부터 팔고 있다"며 "실제로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기 보다는 국민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극기 집회를 주최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는 이날 집회에 50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촛불이 이긴다, 함성 5초간 발사!" 이날 오후 5시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도 열렸다.

집회 초반인 5시 25분. 박원순 서울시장이 무대에 오르자, 태극기 집회 측이 군가 '멸공의 횃불'을 소리 높여 틀었다. 박 시장이 인삿말을 할 때, '멸공의 횃불아래 목숨을 건다'는 가사가 광장 일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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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노란 리본을 묶은 태극기와 촛불을 들고 있다./이범종 기자


◆보수 아버지, 태극기 챙긴 딸에게 "일관성 가져라"

"어머니는 무슨 어머니예요? 대통령은 5년 짜리, 국회의원은 4년 짜리 심부름꾼인데."

광명시에서 온 백원호(50) 씨는 일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부모 자식' 논리에 혀를 찼다. 아내, 아들과 16번째 촛불을 들고 있다는 그는 "대통령이 어머니라면, 여기가 북한과 무엇이 다르냐"며 "그곳은 김일성이 아버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응원하기 위해 촛불을 든 시민도 있었다. 대구에 사는 이모(42·여) 씨는 이날 낮 12시에 출발해, 4시간 만에 서울역으로 왔다. 이씨는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이 걱정돼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며 "오늘로 세 번째 촛불"이라고 말했다.

그는 "(촛불 집회 참여에) 가족이 썩 호의적이진 않다"며 "오늘 태극기를 챙기니까, 보수인 아버지께서 '할려면 일관성 있게 하라'고 말씀하시더라"며 웃었다.

이날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태극기 봉우리에 노란색 리본을 달았다. 그의 태극기에도 리본 두 개가 묶여 있었다.

오후 6시를 넘겨 찾은 태극기 집회 측은 '멸공의 횃불'을 재생하며 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내곡동에서 온 켈로 부대 출신 전병구 씨는 "박 대통령도 억울하지만, 빨갱이를 몰아내야 우리 손자들도 잘 살 것 아니야. 아주 중요햐"라며 "우린 젊은 후손들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랄 뿐이니, 젊은이들이 바르게 판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촛불 집회는 오후 7시 30분께 해산했다. 주최측은 이날 참여 인원이 20만명이라고 주장했다.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던 3·1절 집회는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끝났다.

이범종 기자 joker@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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