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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구호 그친 4·7·4 경제개발 … 60년대식 ‘날 따르라’ 안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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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혁신 3개년 계획 실패의 교훈

1년 걸리던 계획 두 달 만에 뚝딱

기존 정책 재탕·백화점식 끌어와

4차 산업혁명 시대, 민간 앞서 뛰고

정부는 규제 개혁으로 뒷받침해야

중앙일보

박근혜 대통령(사진 왼쪽)이 2015년 1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정부 업무보고:경제혁신 3개년 계획Ⅱ’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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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경제,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루는 경제를 만들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월 6일 ‘신년 국정 구상’ 발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그림자가 비쳤다. ‘개발’이 ‘혁신’으로, ‘5년’이 ‘3년’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기획재정부 등 경제 관계 부처는 발칵 뒤집혔다. 사전에 전혀 협의되지 않아서다. 게다가 전달인 2013년 12월 이미 ‘2014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은 뒤였다. 정부는 부랴부랴 “2월 말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2월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경제의 청사진을 불과 두 달여 만에 완성한 것이다. 재탕·백화점식 정책 나열은 필연적 결과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세부 항목은 59개나 된다. 공공기관 개혁부터 벤처·창업 활성화, 가계부채 관리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았지만 세부 실행 계획은 정부가 기존에 추진했던 정책과 다르지 않았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그해 경제정책방향을 끝낸 상황에서 두 달 만에 새로운 걸 내놓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과거 정책을 다시 뒤져보거나 아이디어 수준인 내용을 검증 없이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발표 당일까지도 청와대와 정부 간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담화를 한 당일 정부가 사전 배포한 자료의 일부 내용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정부안에 없던 ‘통일시대 준비’ 항목이 들어가는 식이었다. 당시 “내용이 왜 바뀌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관료들은 우물쭈물하며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중앙일보



이런 ‘졸속 계획’이 제대로 성과를 낼 리 없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올해까지 달성하겠다는 비전인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15~64세 기준)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중 어느 하나도 이뤄내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가 이에 역행하는 정책을 내기도 했다.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60% 초반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이 비율이 2013년에는 160.3%였다. 그런데 2014년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173.6%까지 올랐다. 게다가 정부가 내세웠던 ‘장밋빛 구호’는 현 상황에서 비춰보면 황당한 수준이다. 당시 정부가 낸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 참고자료’ 중에는 ‘3년 후 우리 경제의 모습’ 부분이 있다. 여기에는 ▶사교육비 부담 경감 ▶안정적인 노후생활 기반 마련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 완화돼 일한 만큼 보상 가능과 같은 문구가 담겼다. 현실과 괴리가 크다.

이런 실패의 주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과거 성공 모델의 답습을 꼽는다. 60년대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 경제성장에 초석을 놓았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현재의 국내외 경제 환경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지금의 한국 경제성장 단계,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환경 속에서 ‘나를 따르라’는 식의 정책은 효과는커녕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방해할 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대통령이 ‘큰 제목’을 제시하고 정부가 이를 억지로 꿰맞춘 터라 정책 발표 이후 제대로 된 정책 추진 체계도 다지지 못했다.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경우 1년 이상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지만 이런 절차도 사실상 생략됐다.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내세운 방향 자체가 틀린 건 아니지만 향후 정책에 대한 민간의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추진 체계가 미흡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 등 이해 당사자 간 조율도 이뤄지지 않아 정책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향후 정부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직접 선도하기보다는 법·제도 개선을 통해 기업인이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제조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환경에서 정부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며 “민간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앞서 뛸 수 있도록 정부는 사전 규제를 최소화하고 사후 규제를 하되 공공성을 훼손하면 강하게 대응하는 식으로 정부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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