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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진정한 행복? 본성에 반하는 관습·규범서 자유로워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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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행복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격식 없이 수다 떨 ‘제3 공간’ 찾길

환경 열악한데 노력 강조는 폭력

소득으로 인한 불행은 국가 책임

최순실 사태로 국가 신뢰 큰 손상

그 때문에 국민들 집단 우울증

중앙일보

“우리 사회는 이제 ‘행복 불평등’을 중요한 화두로 삼을 때가 됐다”고 말하는 ‘행복 심리학자’ 최인철 서울대 교수. 최 교수 앞에 놓인 병 모양의 등에는 행복에 이르는 감정의 단계들이 쓰여있다. [사진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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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양한 연구와 강연을 통해 ‘행복 심리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50) 교수. 살기 힘들고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행복 교육’이 무슨 배부른 소릴까, 하는 선입견을 깔고 그의 강연을 듣다가 귀가 번쩍 뜨인 대목을 만났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복은 노력으로 얻는다’고 강조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빨리빨리 돈 많이 벌어 집 사고, 더 좋은 자동차로 바꾸고 하면 행복하게 사는 것 아닐까. 대개 그렇게 살아온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듯 그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경험의 이력서와 비례합니다. 경험을 풍요롭게 하는 소비를 하세요.” 돈 버는 것 자체가 불행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소득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행복 불평등’을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행복교과서』 펴내 96만 명에게 행복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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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센터장 겸 심리학과 교수가 행복에 관한 긍정적 심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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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주류 심리학은 대개 우울증 같은 인간의 고통 연구에 주력해 왔다. 최 교수는 행복 증진 방법을 연구한다. 행복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행복한 사람과 가까이 하며, 격식 없이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자기만의 ‘제3의 공간’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고통의 심리학이 아닌 행복의 심리학. 네거티브 심리학에서 포지티브 심리학으로의 ‘관점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행복을 함께 연구하고자 한다.

본래 사회심리학을 전공했지만 2010년 1월 문 연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어 오며 ‘행복심리학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가 만든 청소년용 『행복교과서』로 현재까지 전국 2200여개 초·중·고에서 총 96만여 명이 ‘행복 교육’을 받았다. 국민총생산으로는 다 계산되지 않는 행복의 깊고 넓은 의미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 ‘행복심리학’은 새로 생긴 용어입니까.



A : “긍정심리학이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더 많이 사용됐습니다. 학과처럼 하나의 영역으로 보기 보다는,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관심사가 행복이다, 웰빙이다는 식으로 애기하는 형태, 그러니까 연구 주제로 보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Q : 긍정심리학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볼 때 ‘우파적 주제’ 아닌가요.



A :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원래 의미를 보면 우파 좌파와 전혀 상관없어요.”




Q : 신자유주의가 확산된 미국에서 주로 연구되지 않았나요.



A : “절대빈곤이나 전쟁처럼 생존이 긴박한 상황에서 인간의 주관적 경험에 관심을 덜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심리 현상입니다. 목전의 생계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주관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파적이라면 우파적이랄 수도 있지만 저는 거기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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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센터장 겸 심리학과 교수가 행복에 관한 긍정적 심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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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학자들이 연구하는 행복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반인들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를 주로 생각한다. 학자들은 이와 달리 행복의 정의나 원인, 혹은 생물학적인 요인이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 이런 문제를 놓고 연구한다. 최 교수는 생물학적 요인과 비생물학적 요인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강조하는 편이다. 일반인들이 비교적 고개를 끄덕일만한 행복론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Q :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A : “행복을 좁게 정의하면 즐거운 감정, 즉 쾌감으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의하는 게 유리한 점이 있어요. 생물학적인 점과 연계되고, 행복의 측정도 단순해지지요. 그런데 쾌감으로 인생의 행복을 정의하면 성취의 경험, 삶의 의미와 목적·가치 같은 게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의 정의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헌법에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나와 있죠. 이때 행복은 단순히 즐거운 감정을 얘기하지 않을 겁니다. 학자들은 대개 행복을 좁게 정의하려고 하는데, 저는 이것이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계도 있다고 봅니다.”




Q : 최순실 사태 이후 국민들이 ‘집단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A : “국가의 행복도를 설명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국내총생산(GDP). 부자 국가의 국민 행복도가 가난한 국가보다 높아요. 둘째 국민 수명도 중요합니다. 오래 사는 것은 국가의 의료시설 등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셋째, ‘당신은 기업이나 정부가 부패했다고 보는가’입니다, 국가와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신뢰는 사회적 성장을 위한 자본으로만 얘기했습니다. 요새는 신뢰가 인간의 웰빙을 가져오는 변인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최순실 사태는 국가의 신뢰를 굉장히 손상시킨 사건이죠.”


국가의 규범 많으면 국민 행복감 약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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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센터장 겸 심리학과 교수가 행복에 관한 긍정적 심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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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윤리나 도덕의 이중잣대도 행복을 저해하는 것 같은데요.



A : “어떤 경우엔 규범이 있는 게 중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웰빙에는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국가의 규범이 많으면 행복감이 약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가짜 욕망’입니다. 당신 정도의 위치라면 이 정도는 우리 사회에서 해야지, 또는 하지 말아야지 등의 규범이 우리의 본성과 어긋나는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행복에 대한 강박이 굉장히 강한 데 이것은 가짜 욕망을 벗어버리고 ‘진짜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표현일 지도 모르죠.”




Q : 요즘 ‘졸혼’(결혼 졸업)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A : “진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뭘까,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보면 관습이나 규범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는 선수를 예로 들어 볼까요. ‘나는 별로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옛날 같으면 큰일 날 일이죠. 요즘은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관습과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비난보다 공감이 느는 것을 보면 졸혼 뿐 아니라 다른 분야로 확산될 것 같습니다.”


글=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김춘식.배영대 기자 kim.choon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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