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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억대' 이름값 승부수 "장욱진·박수근·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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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옥션 7일 첫 메이저경매

근대 대표작 66점 등 총 246점

거장 장욱진 희귀초기작 '독'

작가 최고가 기록 깰지 주목

천경자 강렬색감 '고흐와 함께'

윤동주 유일시집 초판본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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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진한 황색 항아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덩그러니’로는 부족하다. 여백을 거의 두지 않고 화면 전체를 내리누를 만큼 압도적이다. 그 존재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지나가는 까치 한 마리. 보는 이조차 무심했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까치다. 항아리 어깨너머에는 앙상한 가지가 못내 마음 쓰이는 나무 한 그루가 섰다.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장욱진(1917∼1990)이 1949년에 그린 ‘독’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옥션이 오는 7일 여는 ‘제143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에 메인작품으로 출품된다. 장욱진의 초기작이고 희귀작이다. 그가 남긴 1940년대 작품은 3점뿐인데 ‘독’이 그중 하나다.

1949년 11월 말 서울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연 ‘신사필파 동인전’에서 엿새간 전시한 뒤 전쟁통에 사라졌던 작품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한 화랑에서 발견됐을 땐 손상이 심했고 결국 1970년대 말 한 수장가가 보수를 조건으로 건네받았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화면을 통째 새 캔버스에 옮기는 전면보수까지 받는 등 시련이 많았다. 그간 자료집에서나 보던 그 걸작이 이제 새 주인을 찾는다.

서울옥션이 올해 첫 메이저경매의 승부수를 한국 근대작가로 던진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에서 여는 이번 경매에는 미술에 조예가 없다고 해도 이름만 들으면 다 알 수 있는 국가대표급 작가들의 수억원대 그림을 대거 내놓는다. 장욱진을 비롯해 김환기(1913∼1974), 박수근(1914∼1965), 유영국(1916∼2002), 이중섭(1916∼1956), 문신(1923∼1995), 천경자(1924∼2015) 등이 한꺼번에 나서 낙찰을 기다린다.

총 246점을 낸다. 낮은 추정가로 76억원 규모다. 메이저경매에 앞서 초보 컬렉션을 위해 마련한 ‘마이 퍼스트 컬렉션’에 108점, ‘근현대미술품 경매’에 66점, ‘고미술품 경매’에 72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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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희귀작 ‘독’ 역대 작가 최고가 넘나

8호(45.1×37.7㎝) 크기의 화폭을 항아리로 채우고 아래쪽 중앙에 까치 한 마리, 위쪽 왼편에 나무 한 그루를 배치한 독특한 구성. ‘독’은 이후 장욱진의 장기라 할 ‘구도 무시’ ‘원근 무시’ ‘비례 무시’의 시작점이 된 작품이다. 새와 나무, 집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 그 신념의 ‘무시’ 붓질로 만든 세상. 사람 사는 곳과 동떨어지지 않은 자연을 아우르는 그 세상은 이미 일찌감치 만들어진 셈이다.

이번 경매에서 장욱진의 ‘독’에 쏟아지는 관심은 작가의 역대 최고가를 넘을지에 모인다. 시작가 6억 5000만원에 나서는 ‘독이’ 낙찰될 경우 기존 5억 6000만원에 팔린 ‘진진묘’의 기록을 깨게 된다.

‘독’ 외에도 장욱진의 그림 두 점이 더 있다. 해와 산, 호랑이와 아이, 까치와 그 그림자, 집과 개 등을 세로줄로 의미 있게 배치한 ‘무제’(1984), 둥근지붕집 안에 한 가족을 나란히 들여앉히고 주위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 ‘아이들’(1974)이다. ‘무제’는 8500만∼1억 8000만원에, ‘아이들’은 1억 2000만∼2억 5000만원에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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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이중섭·유영국…국가대표 작가 총출동

여전히 끝나지 않은 ‘미인도’ 위작 논란을 잠시 뒤로한 채 천경자 특유의 강렬한 색감으로 시선을 끄는 ‘고흐와 함께’(1996)도 모습을 내보인다. 네덜란드 전통의상인 플렌담을 입은 여성 뒤로 고흐의 초상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배경에도 고흐를 불러들였다. 고흐가 말년에 제작했다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1890)을 옮겨와 천경자 자신과의 심정적 동질감을 연결했다. 추정가는 5억~9억원이다.

이름만 불러도 애잔한 이중섭의 ‘두 아이와 비둘기’도 2억∼4억원에 출품됐다. 서울에서 마지막 시기에 그렸다는 것밖에 더 이상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종이에 그린 크레파스 연작 중 한 점. 어린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 위에 이중섭 자신의 애달픈 마음을 교차했다.

김환기의 독특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1950년대 그린 ‘붓다’. 부처와 달, 연꽃을 소재로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풍기는 이 그림은 2억∼5억원에 새 주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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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와 더불어 한국서 가장 비싼 화가로 꼽히는 박수근의 ‘노상’(1963)도 나선다. 추정가는 4억 5000만∼8억원. 흰옷을 입고 흰수건을 쓴 여인이 아기를 안은 모습. 군더더기 없이 절제하고 단순화한 선으로 박수근의 완벽한 전형을 드러냈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이외에도 한국 추상회화의 거목인 유영국의 ‘워크’(1975)가 2억∼3억 5000만원에, 조각가로 알려진 문신의 드문 회화인 ‘닭’(1953)이 4000만∼7000만원에 낙찰자를 찾는다.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도

고미술품 부문에 나선 궁중 민화도 이번 경매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조선시대 화원화사가 그렸다고 추정하는 궁중 ‘책가도’다. 8폭 병풍 전면을 하나의 책가로 잇고 각 폭은 3층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특별한 것은 채색이다. 여느 책가도와 달리 화사한 색감을 섬세한 붓질로 입혀 단정하고 위엄있는 왕실의 격식을 제대로 갖췄다. 추정가는 5억∼8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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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때 화원인 남리 김두량(1696∼1763)의 ‘노자도’도 1억∼3억원에 나왔다. ‘말없이 조용히 신선도를 닦으며 무슨 일로 푸른 들가를 거니는가’란 시구를 올린, 남리가 남긴 거의 유일한 작품이다. 1750년대 대마도에서 통신사행렬을 관장하던 아메노모리 호슈가 소장했다는 명확한 이력이 강점이다.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본도 볼 수 있다. 1945년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이 낸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 그동안 소개된 파란색 표지가 아닌 갈색 갈포벽지 표지가 특이하다. 1500만∼4000만원에 새 주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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